제3장. 왕의 도장이 찍힌 금속 (3)

사르디스의 대장간에서 (3)

by 이재인

제3장. 왕의 도장이 찍힌 금속 — 사르디스의 대장간에서 (3)



나는 잊지 않았어.


페르시아에서 죽고, 그리스에서 다시 태어났을 때도. 아테네의 환전상 옆에서 드라크마 은화를 셀 때도.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지나가는 걸 볼 때도.


거래 당사자들에게 선택권이 없는 거래.

그게 화폐의 본질이야.


재인아, 네가 태어났을 때 누가 물어봤어? "한국 원화를 쓸래요, 달러를 쓸래요?" 아무도 안 물어봤지. 태어나는 순간 너는 이미 게임 안에 있었어. 규칙을 네가 정한 게 아닌데, 규칙을 따라야 해. 따르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굶어 죽거나.


이게 자유로운 시장? 웃기지 말거라.


그리스인들은 자유를 사랑한다고 했어.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자랑했어. 하지만 화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민주적이지 않았어. 아테네의 은화를 누가 주조했는지 알아? 라우리온 광산의 노예들이야. 수만 명의 노예가 은을 캤어. 그 은으로 아테네는 함선을 만들고, 페르시아와 싸우고, 파르테논을 지었어.


자유? 누구의 자유?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그는 다릭을 녹였어. 페르시아 금화를. 그리고 자기 얼굴을 새긴 새 동전을 만들었어. 권력이 바뀔 때마다 동전의 얼굴이 바뀌었어. 하지만 시스템은 같았어.


누군가 돈을 만들고, 모두가 그 돈을 써야 하고, 만드는 자가 조금씩 가져간다.


미트라다테스—아니,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지—가 맞았어. 시스템은 왕보다 오래 살아. 알렉산드로스는 서른셋에 죽었어. 제국은 쪼개졌어. 하지만 화폐는 살아남았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도, 셀레우코스 왕조도 같은 시스템을 썼어.


그리고 로마가 왔어.

로마는 모든 것을 가져갔어. 그리스의 철학, 이집트의 곡물, 그리고 리디아에서 시작된 주조 기술. 로마 데나리우스. 세계를 정복한 은화.

나는 로마에서 세 번 태어났어. 공화정 말기에 한 번, 제정 초기에 한 번, 그리고 몰락기에 한 번.


몰락기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지금은 하나만 기억해.

크로이소스가 발명한 것은 동전이 아니야. 신뢰를 독점하는 방법이야.


옛날에는 신뢰가 분산되어 있었어. 네가 날 믿고, 내가 널 믿고. 그래서 거래가 성립했어. 하지만 동전이 생기면서 신뢰가 집중됐어. 왕에게. 왕의 도장에게. 너와 나 사이의 신뢰는 필요 없어졌어. 우리 둘 다 왕을 믿으면 되니까.


편리하지? 하지만 대가가 있어.

왕이 배신하면, 우리 모두가 당해.


크로이소스는 배신했어. 다레이오스도. 알렉산드로스도. 로마 황제들도. 모든 권력은 결국 화폐를 타락시켰어. 금을 줄이고, 은을 줄이고, 가치를 떨어뜨렸어. 보이지 않게.


그리고 너희 시대의 권력도 마찬가지야.


재인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낼 때 너한테 허락받아? 연준이 양적완화를 할 때 미국 시민에게 투표라도 하나? 없어. 그들은 "경제를 위해서"라고 말해. 하지만 그 경제가 누구의 경제인지는 말하지 않아.


크로이소스의 사자 머리가 사라진 지 2500년이 지났어. 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변하지 않았어.

돈을 만드는 자가 모두에게서 가져간다.

선택권 없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로마에 대해 말해줄게. 은화가 어떻게 동화가 됐는지. 제국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산시켰는지.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권력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나는 잊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