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함무라비의 예외

막간: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안전판'

by 이재인

제4장. 함무라비의 예외



할머니는 함무라비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겠노라고, 지나가듯이 말했었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깜박하고 함무라비 이야기를 빼먹은 게 아니다. 나중에 하려고 아껴둔 것도 아니다. 그냥 말하기 싫었던 거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신용 서사'에 잘 안 맞으니까. '빚이 인류를 진보시켰다'는, 그리고 동시에 모두가 '빚을 만드는 시스템의 노예가 되었다'는 그 웅장한 내러티브에 찬물을 끼얹으니까.


그래서 내가 따로 정리한다.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754년경. 바빌로니아.

282개의 법 조항이 검은 현무암 기둥에 새겨져 있다. 관광객들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걸 보고 사진을 찍는다. 가이드는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설명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최초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완전하게 남아 있는 건 맞다.


나는 법 조항 전체를 읽었다.


대부분은 지루하다. 누가 누구의 소를 훔치면 얼마를 배상하라. 누가 누구의 눈을 찌르면 그 눈도 찔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중학교 때 배운 그거다. 이 한 문장이 이 법전의 기본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건 빚에 관한 조항들이다.


제48조.

"만약 어떤 사람이 빚을 지고 있는데, 폭풍이 곡식을 쓸어가거나 흉년이 들거나 물이 부족하여 곡식이 자라지 않았다면, 그 해에는 채권자에게 곡식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는 점토판을 물에 씻어 없애고, 그 해의 이자를 내지 않는다."


점토판을 물에 씻는다.

빚이 사라진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빚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약속'이다. 적어도 기록하는 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한, 인간이 쉽게 깰 수 없는 것이다. 그 빚과 빚을 기록한 장부 점토판이야말로 수메르 문명을 만든 동력이자 저주이다. 그런데 함무라비는 그걸 씻어버리라고 한다. 흉년이 들면. 폭풍이 치면. 물이 마르면.


왜?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이다. 할머니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할머니라면, '시스템은 훨씬 더 복잡하고, 복잡한 걸을 더 적은 말로 표현한단다. 재인아, 표면적인 말은 그것이 아무리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표면'일 뿐이다. 얘야, 내가 재인이 너와 더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같은 식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함무라비는 알았던 것 같다. 빚이 쌓이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걸.

농부가 빚을 진다. 갚지 못한다. 이자가 붙는다. 다음 해에도 못 갚는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다. 결국 농부는 땅을 잃는다. 땅을 잃은 농부는 몸으로 갚는다. 노예가 된다. 가족도 노예가 된다.

한 명, 두 명이면 괜찮다.

하지만 흉년이 계속되면? 전쟁이 나면? 수천 명의 농부가 노예로 전락하면?

세금 낼 사람이 없다. 군대에 갈 사람이 없다. 왕국이 흔들린다.

그래서 함무라비는 예외를 만들었다. 사회적 안전망을. 아, 이 경우에는 '안전판'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그 안전판은 비록 빚을 기록하지만, 빚이 너무 커지면 씻어버릴 수 있게 하는 안전판이다.


더 흥미로운 건 제117조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빚 때문에 자신의 아내나 아들이나 딸을 팔았거나 노역에 보냈다면, 그들은 3년 동안 산 사람의 집에서 일해야 한다. 4년째에는 자유를 얻는다."


3년이다. 영구적 노예가 아니다. 빚 때문에 팔려간 사람은 3년 후에 풀려난다. 빚이 얼마였든 상관없이.


이건 채무 불이행의 제도화다. 현대 용어로 하면 '파산법'이다. 개인회생이다. 빚을 다 갚지 않아도 새 출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기원전 18세기에 있던 일이다.


할머니는 빚이 문명을 만들었다고 했다. (물론 할머니는 결코 문명을 축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맞다. 빚이 문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함무라비는 덧붙였을 것이다. 빚을 탕감할 수 있어야 문명이 유지된다고.

무한히 쌓이는 빚은 사회를 파괴한다. 채권자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고, 채무자는 영원한 노예가 되고, 중간계층이 사라지고, 결국 왕국 자체가 무너진다.

함무라비는 왕이었다. 채권자 편이어야 했다. 부자들, 신전들, 상인들. 그들이 왕권을 지탱하니까. 하지만 그는 채무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다.


왜?

장기적 이익 때문이다. 농부가 다 노예가 되면 누가 밀을 키우나. 누가 세금을 내나. 누가 전쟁터에 나가나.

빚은 유용하다. 하지만 통제되어야 한다.

이게 함무라비의 교훈이다.


물론 이 교훈은 반복적으로 잊혀졌다.


로마는 잊었다. 그래서 망했다.

중세 유럽도 잊었다. 그래서 농노제가 천 년을 갔다.

현대도 잊고 있다. 학자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빚. 국가 부채. 이자에 이자가 붙고, 원금은 줄지 않고, 사람들은 평생을 갚는다.


함무라비의 '점토판 씻기'는 없다.


파산은 있지만, 그건 굴욕이다. 낙인이다. 신용불량자. 사회적 죽음.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안 했다.

아마 불편해서였을 것이다. 함무라비 시절만도 못한 그 이후의 시대에 대한 부끄러움과 갑갑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혹은 당신께서 지내온 5천여 년의 시간 중 얼마 안 되는 '그나마 좀 나았던 시절'이 함무라비 시절과 얼마 안 되는 수 년에 불과한다는 걸 말하기가 민망해서였을까.


그러나 할머니는 말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기록해둔다.


함무라비는 알았다.

빚에는 예외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예외를 만들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빚에 짓눌려 산다고.


할머니가 그 다음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기록한 이야기였다. 이른바 '성경'의 저자들과 그것을 경전으로 믿고 따르는 이들의 이야기. 할머니는 그 이야기야말로 '그 남자'에게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이야기라고 했다.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문서에서 이자를 죄악시하고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또 빠진 부분이 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따로 글로 남길 것이다. 이것은 기록하는 자의 권리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