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를 쓴 게 아니라 헐값에 산 것이다
얘야, 재인아.
'사라'가 죽었을 때 나는 헤브론에 있었단다.
그때 이름은 키르얏 아르바였지. '네 명의 도시'라는 뜻이란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여러 설이 있는데, 나는 그중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 도시 이름의 유래 같은 건 대개 나중에 지어낸 것이거든.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그곳에서 벌어진 거래란다.
아마도 기원전 1800년경—정확한 연도는 나도 모른다, 그때는 연도를 세는 방식 자체가 지금과 달랐으니까—아브라함이라는 남자가 아내의 시신을 앞에 두고 울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여자의 이름이 사라라고 하더구나. 듣기로는 백스물일곱 해를 살고 죽었단다. 지금껏 5천 년을 살아 온 나도 한 육신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사라는 성경에 사망 시 수명이 기록된 유일한 여성이라고들 하더라. 나는 당시에 그 여자를 몇 번 본 적이 있지. 강인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단다. 웃을 때도 눈이 따라 웃는 법은 좀처럼 없었다. 사막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대개 그렇거든.
아브라함은 이방인이었단다.
그 남자는 가나안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어. 듣기는 우르에서 왔고 하란을 거쳐 왔다고 하더구나. 수십 년을 이 가나안 땅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떠돌이'였고 '거류민'이었다. 가축은 많았다. 종들도 많았다. 은도 많았다. 하지만 땅은 없었다.
그때,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말았다.
"아니, 할머니.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사람이 모두 실존 인물이었고, 할머니는 그 사람들을 실제로 알았다는 거예요?"
할머니는 웬일로 티 없이 밝은 웃음을 지었다.
"얘야, 재인아. 내가 말하지 않았니. '나중에 듣고 보니' 그렇더라고. '~다고 하더구나'라고. 당시에 들은 이야기도 있지만, 수 년 수십 년이 지나서 들은 얘기도 있고, 심지어 어떤 건 다음 생에서 들은 이야기들도 있다. 이 할미 생각에는, 성경 책 속에 기록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그 둘이었을 거라는 게다. 지금도 읽을 수 있는 성경에 묘사된 것과 거의 대부분이 일치하는 상황의 주인공은 딱 그 남자 뿐이었거든. 그 아브라함이라는 남자 말이다."
할머니는 잠시 말씀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성경 속 다른 이야기-약속의 땅이라거나,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을 대접했다거나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건 내가 살아 있던 당시에 알 수도 없는 일이었고, 들을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니죠."
"그렇지. 나는 알 수 없다고 말할 뿐,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단다. 그저 우연히 스쳐 지나간 인물일 뿐이니까."
나는 잠깐 침을 삼켰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 의하면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아마도 '성경에 묘사된 그대로의 인물'은 아니었다는 얘기일게다. 어쨌든, 나는 아브라함을 봤으니까.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건 안다."
"그렇군요."
내가 납득하는 기색을 보이자, 할머니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땅. 그렇다, 아브라함에게는 땅이 필요했다.
원래 유목민에게 땅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계절마다 옮겨 다니니까. 양 떼가 풀을 뜯을 목초지가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옮겨 다닐 수 없지 않느냐. 묻어야 한다. 어딘가에. 영구히. 그리고 아브라함은 듣기로는 그가 몹시 아끼고 사랑하던 아내 사라가 죽어서 괴로워 하고 있었단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라를 묻을 땅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절실히 필요했던 게지.
아브라함은 히타이트(헷) 사람들 앞에 섰다. 성문 앞이었다. 그때 중요한 일은 다 성문 앞에서 이루어졌다. 재판도, 계약도, 선언도. 공개적으로. 증인들 앞에서.
"나는 당신들 가운데 떠돌이이며 거류민입니다."
아브라함이 말했단다. 나는 뒤쪽 군중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제가 죽은 아내를 묻을 수 있도록 당신들 가운데 묘지를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땅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사겠다'고 했다. 거저 받겠다는 게 아니었다.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히타이트 사람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예상된 각본에서 벗어난 대사였으니까.
당시 관례는 이랬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하면, 상대방은 관대함을 과시해야 한다. "드리겠습니다." "공짜로 가지십시오." 이렇게 말해야 체면이 선다. 물론 이건 진심이 아니다. 형식이다. 요청한 쪽도 안다. 그래서 거절한다. "아닙니다, 값을 치르겠습니다." 상대가 다시 양보한다. "그래도 받으십시오." 이런 밀당이 몇 차례 오간 뒤에야 실제 거래가 시작된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물을 주면 세 번은 사양해야 예의다. 바로 받으면 상스럽다.
히타이트 사람들이 대답했다.
"어르신, 저희 말을 들어보십시오. 어르신은 저희 가운데 하느님의 제후(족장)이십니다. 저희 묘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 어르신의 죽은 분을 묻으십시오. 저희 가운데 누구도 어르신께 자기 묘지를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제후.
대단한 칭호다. 외교적 수사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니 우리가 베풀겠다는 것이다. 베풂. 그게 핵심이다. 베풀면 베푼 쪽이 우위에 선다. 받은 쪽은 빚을 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빚. 계약서에 적히지 않는 빚. 하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빚.
아브라함은 그 빚을 지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형식적 겸손. 그리고 말했다.
"당신들이 제가 죽은 아내를 묻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제 말을 듣고 저를 위해 초하르의 아들 에프론에게 청해 주십시오. 그의 밭 끝에 있는 막펠라(막벨라) 굴을 제게 파시도록 해주십시오. 제대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당신들 가운데서 묘지로 쓸 수 있도록 저에게 파시게 해주십시오."
구체적이었다.
막연히 '땅을 달라'가 아니었다. 특정한 장소. 막펠라 굴. 에프론의 밭 끝에 있는 동굴. 아브라함은 이미 조사를 마친 것이다. 어디가 적당한지. 누구 소유인지. 얼마쯤 할지.
에프론이 군중 속에 있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에프론이 말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그 밭을 어르신께 드립니다. 거기에 딸린 굴도 드립니다. 제 동족들이 보는 앞에서 드립니다. 어르신의 죽은 분을 묻으십시오."
다시 절을 했다.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그 밭 값을 드리겠습니다. 제게서 받으십시오. 그래야 제 죽은 아내를 거기에 묻겠습니다."
세 번째 거절.
이쯤 되면 에프론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 노인은 진심이다. 정말로 돈을 내겠다는 것이다. 형식적 양보가 아니라 실질적 거래를 원한다는 것이다.
에프론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땅값이 은 사백 세겔(세켈)입니다. 그까짓 것이 어르신과 저 사이에 무슨 대수겠습니까? 어르신의 죽은 분을 묻으십시오."
은 사백 세겔.
'그까짓 것'이라고 에프론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은 사백 세겔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비교를 해보자. 수백 년 뒤 예레미야가 아나톳에서 밭을 샀을 때 값은 은 열일곱 세겔이었다. 율법에서 규정한 노예 한 명의 몸값이 은 서른 세겔이었다. 사백 세겔이면 노예 열세 명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밭 스물세 개 값이다.
에프론은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절박한 사람에게. 죽은 아내를 묻어야 하는 사람에게. 이방인에게.
나는 지켜보았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하나.
그는 흥정하지 않았다.
성경 본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에프론의 말을 듣고, 히타이트 사람들이 듣는 자리에서 에프론이 말한 대로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프론에게 주었다."
그냥 줬다.
값을 깎지 않았다. "너무 비싸다"고 하지 않았다.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그러니까 정확한 저울로 속임 없이—은을 달아서 넘겼다.
왜?
나는 그 답을 곧 알 수 있었단다.
나는 그날 밤 아브라함의 천막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그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늙은 남자. 수염이 희었다. 걸음이 느렸다. 하지만 등은 굽지 않았다.
그는 동쪽을 향해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이미 여러 번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안다.
그는 미래를 산 게야.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셈이지.
아브라함은 사라를 묻을 땅만 산 게 아니다. 아내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도 묻힐 땅을 산 게다. 물론 자신의 아들이, 손자가, 후손들이 묻힐 땅을 산 것이기도 하지. 그는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산 것이다. 떠돌이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공짜로 받았더라면 그의 권리는 발생하지 않았을게다.
선물은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 베푼 사람 마음이니까. 하지만 값을 치르고 산 것은 다르다. 계약이다.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진 계약. 돈이 오간 계약. 이건 취소하기 어렵단다. 그래, 취소가 아주 불가능한 게 아니란 건 재인이 너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얘야. 우리가 지금 현대에서 보고 있듯, 결과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산 것은 은 사백 세겔 짜리 굴이 아니라, 특정한 땅에 대한 '영구적 권리'와 명분을 산 게야.
물론 그 땅값은 비쌌다. 터무니없이 비쌌다. 하지만 그 비싼 값이 오히려 권리를 확고하게 만들었지. 나중에 누가 "그건 그냥 준 거였어"라고 우길 수 없게. "히타이트 사람들이 베푼 호의였어"라고 번복할 수 없게.
사백 세겔.
그 금액은 증인들의 기억에 새겨졌다.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손자들에게 전해졌다. 성경에 기록되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것이 역사상 최초로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고대의 부동산 거래다.
계약의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 당사자(아브라함과 에프론). 목적물(막펠라 굴과 밭). 대가(은 사백 세겔). 증인(히타이트 사람들, 성문에 들어온 모든 이). 권리 이전의 선언("에프론의 밭은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앞서지 않니?
수메르의 점토판 계약서들보다 더 완전하게 서사화되어 있지 않니?
나는 그날 깨달았단다.
이 남자는 장사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장사보다 더 큰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돈의 진짜 용도를 알고 있었다. 돈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권리를 확정하는 것이다. 미래를 묶어두는 것이다.
결국 사라는 그가 원했던 대로 막펠라 굴에 묻혔단다.
나중에 아브라함도 거기 묻혔다. 이사악과 리브가도. 야곱과 레아도.
그 동굴은 지금도 있다. 헤브론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싸우는 그곳에.
은 사백 세겔의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