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시샘에게
시샘아,
나 지금 1년 반 만에 미용실에 와서 파마를 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긴 머리는 파마 한 번 하려면 4시간은 각오해야 하는데, 아기를 낳은 뒤에는 그 정도 조각의 시간이 너무도 희귀해졌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시간. 이번에는 갑자기 손주를 보고 싶다고 3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 온 부모님을 의지하며, 든이를 맡기고 무작정 미용실로 나왔어.
얼마 전에 너가 머리를 히피펌으로 과감한 변신을 했잖아. 그걸 보면서 나도 덩달아 머리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더라. 방치된 내 머리에도 생기를 더 하고 싶었어. 그럼 좀비 몰골의 맥아리 없는 나도 좀 더 생기있어 질 수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너처럼 변신까지 하지는 못했어. 이번에도 언제나의 나처럼 굵은 웨이브를 머리카락에 새기고 있어.
너와 편지를 주고 받기로 한 뒤에, 이왕이면 너에게 보내는 첫 편지만큼은 햇살 가득 들어오는 예쁜 카페에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쓰고 싶었어. 평화롭고 우아하게 말야. 이렇게 메두사꼴로 쓰게될 줄은 몰랐네. 흡사 뱀 같은 줄이 주렁주렁 달린 파마 열기구를 머리 위로 매단 채, 뜨거운 열기를 참으며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나에게는 답장을 보내기로 약속한 날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으나 역시나 약속한 날 하루 전이 되어서야 편지를 쓰고 있으니, 이 벼락치기 습관도 10년 내내 치렁치렁 달고 다닌 나의 긴 머리처럼 참 여전하다.
편지 자체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때가 다 되어서야 쓰고 있지만, 그동안 종종 너에게 전할 말들이 떠오를 때마다 입 안에서 유심히 굴렸어. 그렇게 굴리다가 마음에 드는 말을 만나면 삼켜서 가슴 속에 저장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렇게 가슴 속에 남아있는 말들을 써나가보려 해.
사실 난 알고 있었어.
내가 너에게 건네는 ‘잘 했어’라는 말이 너에게 아쉬울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나야말로 그 말 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아쉬웠거든.
너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말이 아니란 걸 알았어. 답답할 너의 마음을 맑게 해 줄 지혜의 말이 내 안에 없을까 뒤지고 또 뒤졌어. 하지만 내가 진심 다해 할 수 있는 말은 ‘잘 하고 있어.’ 밖에 없더라. 마치 태어나서 배운 말이 그 말 뿐인가 싶도록. 줄곧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기꺼이 나누어준 너의 속마음에 어떻게라도 힘을 주고 싶을 때는 조마조마 하며 ‘잘 했어'라는 말만 했던 거 같아. 너가 퇴사를 한다고 해도 “잘했다”, 너가 퇴사를 안한다고 해도 “잘했다” 한 것처럼.
조언을 듣고 살아본 적이 별로 없어. 9살 즈음 부터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거든. 목회자라는 부모님 직업 상 많은 어른들이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러 우리 집으로 오고는 했는데, 나는 그 옆에서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쫑긋거리며 어른들의 고민을 들었어. 듣는 내내 다 큰 어른들의 고민이 좀 유치하게 느껴졌어. 그러니까 사실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 반면 내게 고민이 생겼을 때는 나의 이 심층적이고 복잡하고 오묘한 고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기고만장한 채로 내 안의 고민들을 줄곧 알아서, 스스로 척척 해결하려고 했어.
10살 즈음 나를 따돌리는 무리 속에서 견뎌온 3년의 시간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떨어져 14살부터 10년 넘게 기숙사 생활을 했던 시간 동안,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는 데에 익숙해져 갔어. 외롭고 치열한 고민 뒤에, 내가 한 선택에 내가 책임지면 된다는 결론을 내릴 때가 많아졌지. 그러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는 사실 이미 내 안에서 어느 정도의 답을 내린 뒤, 그 답을 지지해 줄 만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던 것 같아.
갑자기 그 날이 떠오르네. 내가 스무살 때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고백할까 말까 고민했던 그 밤을 기억하니? 태생적으로 수줍음이 넘치던 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한 번도 상대방에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스무살이라는 바람이 불었는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났었어. 그래서 결국 너를 불러내서 ‘사실 내가 걔를 좋아하는데, 걔는 어차피 곧 군대 가니까 그냥 내 마음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을 항상 숨겨만 왔었는데 이제는 이 마음을 존중해보고 싶다’며, 기숙사 휴게실에서 너를 붙들고 내가 왜 오늘 밤 그 남자애한테 고백해야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었어. 그랬을 때 펼쳐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말야. 넌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어. “넌 지금 걔한테 고백하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아온 거 같은데? 사람은 원래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줄 사람을 찾아서 고민을 이야기하잖아.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고백해! 잘 생각했어!”라며 내게 말했어.
너의 그 말이 인상 깊었어서 살다가도 종종 생각났었어. 들킨 것 같았거든. 이미 내 안에서 어느 정도의 결론이 난 상태에서, 그 결론이 맞다고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는 게 내가 조언을 구하는 이유였지. 그날 밤 시샘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기꺼이 해준 덕에 나는 내게 있는 모든 용기를 다 긁어모아서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고백이란 걸 해봤어. 그러다가 얼떨결에 엉성하고 서툴렀던, 그렇지만 가장 순수하게 예뻤던 첫 연애도 해봤고.
그러니까 나는 주어진 인생에 대해 내가 이토록 애쓰고 있으니 그저 ‘잘 하고 있다'는 말만 듣고 싶었던 시간이 길어. 나로밖에 살아보지 못해서 남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남에게도 해주었나봐.
잘 하고 있다.
비록 내 안의 유일한 단어이지만, 가장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이었어.
틀리는 게 무서웠던 것도 있었어. 어떤 상황에서든 오답을 말하느니 침묵을 선택하는 편이었으니까.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내가 다 알 수 없는데,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들이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길에 방해가 될까봐.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 방해물같은 존재가 될까봐. 그런 두려움이 있었지. 그래서 어쩌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진실의 말을 해야 할 순간에 어버버 거리며 “잘 하고 있어"라는 말만 했던 거 같아.
사람들이 다 나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미 어른인 줄 알았던 내가 아직 한참 어리다는 걸 깨달으면서는 내게 만병통치약인 “잘하고 있어"가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았어. 너에게도 그 말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은연중에 느꼈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어서 나이가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난 친구의 현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지혜롭게 알아채서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시샘은 내게 그렇게 해주었거든. 어쩌면 내가 그랬듯 너도 네가 받고 싶은 것을 나에게 준 게 아닐까 싶어. 나에게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넘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도, 그건 그 사람이 잘못했다는 말도, 이 때는 너가 좀 예민했던 거 같다는 말도 너는 때때로 솔직하게 건네주었어. 나는 때때로 그 진실한 말들에 흠칫 놀라 시큰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네 말이 맞을 때가 많았어. 그래서 종종 너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속이 시원하더라. 마침 이번에 내가 작업하던 일을 그만둘 때도 그랬잖아.
분명 너에게 내가 에디터 일을 그만 두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왜 그래야만 하는 지를 단호하게 말했었지. 아이를 키우며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 내 삶 속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일이 아닌 것들은 욕심이 나도 내려 놓아야겠다고 했었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겠다고. 그런데 그리고 나서 일주일 뒤에 또 흔들리고 말았지. 단호했던 마음은 증발한 뒤, 그 일이 주던 안정감을 놓기 싫은 마음이 커졌어.
그렇게 내가 다시 갈팡질팡 할 때 너는 단호하게 말했어.
“아냐. 다정아. 그 일은 그만두는 게 맞아.”
네 말은 무더운 여름에 마신 냉수처럼 찌릿하고 시원했어.
덕분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먼지처럼 쌓인 불안을 씻은 뒤 중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
그래서 결국 그 일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 그리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 몰라. 그게 참 고마웠어.
나도 너에게 "잘 하고 있다"는 말 외에 다른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라. 아예 써 보지 않은 근육이랄까. 조금씩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맑게 할 수 있는 말은 아직은 그뿐이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 너도 좋아하지? 그 책에는 말을 더듬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오잖아. 본인 입 안에 수많은 말들이 맴돌지만, 막상 자신을 쳐다보는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입술이 돌덩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소년. 나는 그 소년의 마음을 좀 알 것만 같았어. 나도 입에서 맴도는 수많은 말들 끝에 결국 하지 못하는 말이 많으니까.
그 소년이 아빠와 함께 강가를 산책을 하는 장면을 좋아해. 학교에서 발표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해 비웃음을 당한 소년이 아빠와 산책하면서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려. 그런 아이에게 아빠는 너는 왜 말을 못하냐는 추궁 대신, 말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설명 대신, “너는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야”라고 이야기 해. 강을 좋아하는 소년은, 본인이 강물처럼 말한다는 아빠의 말에 큰 용기를 머금어.
강물처럼 말한다는 게 뭘까 생각해봤어. 강물 소리를 떠올려보려니 쉽진 않더라. 강물은 보통 조용히 흐르잖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굽이치고 소용돌이 치고 물거품이 이는 소리가 보이고 또 들리지. 아빠도 소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소년히 강처럼 내고 있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말을 듣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소년은 “나는 말을 잘 못해"라는 말 대신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는 말을 붙들어. 그리고 그 말이 준 용기로 조금씩 입을 열 수 있게 되지.
네가 나에게 전해준 지난 편지가
내게는 “너는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어.
“나를 깜깜한 시간 속에서 구출해 낸 건, 멋진 조언이 아니라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너의 다정함이었어”라는 너의 말이 “잘했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 같아 아쉬워하는 나를 토닥여줬어. 내가 말하는 “잘 하고 있어"라는 말 속에 담긴 건 다정함 뿐 아니라 두려움도 있었는데, 너는 다정함에 집중해주더라.
덕분에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을 조금 덜 두려워하면서 하게 될 것 같아.
혹시 내 말이 필요없는 말이 될까봐 두려워질 때마다 네가 나에게 준 편지를 붙들거야.
다른 이들에게 더 자신있게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을 건넬거야.
앞으로도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은 너에게 지겹도록 진심 다해 전하겠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말이니까. 동시에 네가 준 용기로 입을 떼는 새로운 말들도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내 입에서 흐르는 모든 말들이 너에게 언제나 다정히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네.
PS. 파마는 잘 된 거 같은데, 기껏 이렇게 하고 갈 데가 없어서 집에 와서 든이랑 셀카를 찍었어. 아이고 보람있다. 그래도 확실히 전보다 생기가 차오르는 것 같아.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글), 시드니 스미스(그림), 김지은(옮긴이), 책읽는곰(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