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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찾아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4화 /방구석에 구겨진 휴지조각 같던 인생 탈출기

에세이를 쓰기 전까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위와 같은 질문이 계속된 10년이었어요.


내가 어디에 있고

내가 누구이고

내 주변이 왜 이런 세상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는

내가 만든 감옥이 되어버린 10년.

나는 왜 지금, 존재해서, 내가 만든 감옥에 있는 걸까.


경력이 단절된 직후에도

 절대로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라는

 나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틈새 없는 일상의 압박과

도둑 된 시간들로 인해

 언제인가부터 나도 모르게

내다 버린


대학생 때부터

줄곧 단 하나,

연구자라는 길을,


 십 년을 넘게 지켜온

 나의 과학자라는

 정체성.


그 정체성을

못 본 척하는 게 버려야 하는 게

나의 처지에서는 가장 최선이라고

나 자신을 다그쳤었고,


동시에

인생에서 과학자라는 정체성을 버리며

세상에서 나의 역할은

사라졌던 것 같아요.


세상에 더 이상 나의 존재이유가 없었다. 나의 정체성이 없어진 나는, 스스로 그렇게 세상의 감옥에 나를 가두었다.



 이렇게  저를 철저한 인생의 이방인이자

세상을 새장감옥으로 만든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

  익숙한 저만의 세상과의

사무치는 이별이었습니다.


그 이별과 함께,

과학자라는 정체성을


아니 저 자신을  내려놓으며

 (=경력이 단절되며)


 눈부신 세상과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눈앞에서

잿빛 암흑의 먼지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진 휴지조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체성을  잃은 이상.


 갑자기 낯선 세상에

저 역시 암흑의 일부가 되어

먼지처럼 흩어지는

티끌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무 無의 존재

혹은 인생의 구석에

구겨진 휴지조각이 되어갔어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과학자라는 저의 정체성이자 브랜드는

직업의 한 부류의 「명칭」이 아니라.


 저를 이 세상에 살아가게 하는

 이정표이자

저의 인생을 단단하게

세상 속에 꽂고

흔들리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천이자 에너지였다는 것을.


 300페이지가 넘는

저의 연구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집필하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출판거절에도

 계속 쓰고 끝내야만 했어요.


 다시 제가 인생의 알 수 없는 미래로

 두렵지만 한 발을 내 딛기 시작했을 때

과학자라는 정체성의 닻이

저를 다시 단단하게

잡아당긴 느낌이었어요.


글쓰기는 나의 인생을 다시 단단하게 꽂아주었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주었다.

 항상 어둠 속 깊은 수심 속에서

제가 찾아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제가 나아가는

인생의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먼저 그것을 알아봐 준 건

제가 쓴 글을 읽은 독자분들이었어요.


경력이 단절된 후에도

생각해 보니 어딘가에 항상

글을 쓰고 있었어요.


끊임없이 10년간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쓰며

 서론/본론/결론/토론에 적합한 글만

채찍 당하며 써야 했던 저는

 같은 형식의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이 모인 네이버카페에 육아를 하며,

 투자를 하여 멤버로서

하나둘 글을 쓰기 시작하면

 독자분들이 가끔 그러더라고요.


글에서 저의 정체성이 항상 보인다고요.


 저는 그저 글 쓰며 얻은 직업병입니다.

 라고 치부했지만.

게 바로 저의 정체성이었어요.




 과학자라는 저의 정체성은

사실 제 안에서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아봐 주길 기다렸던 나의 정체성, "과학자"


그 알아차림은  

2년 전 첫 고전소설의 독서에서

시작되었어요.


책 수레바퀴 아래서의

헤르만헤세의 묘사를 보며

눈으로 덮인 설국의 아름다움을

너무도 수려하게 묘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을 보며

10년간 잊고 지낸 주변의 세상과 생명을,

자연의 놀라움을 알아보고 관찰하던

 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고전소설 작가들임과 동시에

과학자였어요.


 단지 과학자는

 감정을 뺀 단어들을

규칙에 따라 늘어놓는 것이고

그들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음으로 자연을 자신의 언어로 섬세하게

 글로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글쓰기 선생님들은 고전소설의 저자들이었다. 한 줄 한 줄 그들의 표현을 공부했다, 과학자의 시선을 동원해서.


그러면서 결심했던 것 같아요.


내가 당장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는 못되더라도

 과학자의 눈으로 보며 쓰지 못했던

심장이 느낀 감정을 그리는

 글 쓰는 과학자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요.


그렇게 혼자서 고전소설의 작가들을

선생님으로 삼고

 조금씩 글쓰기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평생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다가오는데!!!!!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당신의 매일을 응원하는 시 쓰는 과학자가 당신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시 쓰는 과학자의 끊임없는 도전 이야기,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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