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과 우월감이 올림픽의 꽃일까요?

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올림픽에서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경기에 참여하고, 관중들이 열광하며 경기를 지켜보는 이유겠지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승리와 개인의 영광에 큰 비중을 둡니다. 세계 기록과 역사적인 성과에 집착하고, 각 나라가 획득한 금, 은, 동메달의 개수를 추적하며, 금메달을 따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든 상관없이 온 정신을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과 환희를 보냅니다.


그러나 스토이시즘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운동선수가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위대한 상이 있습니다. 부상을 극복하고 완주하는 것, 시상대에서 자신의 신념을 보이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 경쟁자를 대하는 방식 등입니다. 우리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에서 뉴질랜드의 니키 하멜린과 미국의 애비 다고스티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두 선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자 5000미터 예선 경기 도중, 니키 하멜린과 애비 다고스티노는 약 3000미터 지점에서 서로 얽혀 넘어졌습니다. 애비 다고스티노는 먼저 일어나 니키 하멜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다고스티노는 하멜린에게 "일어나야 해, 우리 이 경기를 완주해야 해"라고 격려했습니다. 하멜린은 다고스티노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고, 두 선수는 함께 경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고스티노가 무릎에 심각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멜린이 다가가 다고스티노를 도왔습니다. 하멜린은 다고스티노를 부축하며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고, 두 선수는 함께 결승선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다고스티노는 부상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달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두 선수는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멜린은 29위, 다고스티노는 30위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이들은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스포츠맨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 후 서로를 안아주며 격려했고, 그 순간은 올림픽 정신의 진정한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감동적인 순간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두 선수는 올림픽 정신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이 메달은 올림픽에서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상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승리가 아닌, 진정한 용기와 의지, 그리고 스포츠맨십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스토이시즘 철학자들은 가장 약한 사람들, 즉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변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우리의 진정한 인격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스토이시즘 철학자였던 크리시포스는 장거리 경주자였으며, 부정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경쟁심은 운동 선수를 동기 부여하지만, 승리를 위해 속이거나 상대방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영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쉽게 유혹에 빠져들지만, 진정한 시험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위기가 클 때, 선택이 어려울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김연아, 장미란, 이봉주, 박태환, 손연재, 김현우, 오진혁, 안현수, 전이경, 유영, 이대훈, 서희주, 문대성, 장미란, 이상화, 양학선에게 열광한 이유이겠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승리, 원칙을 지키는 승리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고의 자신이 되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추구해야 할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 할 유산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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