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지금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느껴야 하는 감정
*앞서 작성했던 교사 급여는 호봉대로 아니었나요? 글이 감사하게도 인기글에 추천되면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혹여나 우리 학교 학생들도 본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2025년 8월 31일 이후로 3년 6개월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신분이 해제된다. 사실 내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된 것도 처음 퇴직(사직? 퇴사? 아무튼)을 결심한 후 느낀 우울감 때문인데, 궁하면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는 좋은 사례 중 하나가 될 듯하다.
1. 퇴직을 고려하게 한 요소들
1-1. 과도한 업무량
내가 해야 하는 업무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매 학기마다 8개 과목에 해당하는 수행평가 실시(총 14개의 학급)
-매 학기마다 8개의 시험 원안지 생성(참고로 1년에 학기가 세 개임)
-다른 교과 교사가 만든 시험 원안지 오류 검토(매 학기 시험기간마다)
-시험이 끝나면 나이스 성적처리
-성적처리가 끝나면 진급학년의 모든 학급 생기부의 오류 검토
(창체 특기사항, 행동특성 등, 그리고 매 학기 끝날 때마다 진급학년이 있음. 1년3학기제이기 때문.)
글로만 적어서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교직에 대해 아시는 분이 보신다면 이건 도저히 한 명에게 배정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1-2. 불공정
나는 위의 업무를 쳐내면서도 월급일이 되면 힘이 오히려 빠졌다.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을 개설하여 수당을 더 받으라고 했지만 학교에 한 명뿐인 한문교사였기에 수업 배치가 너무 들쑥날쑥하여 방과후 운영이 벅찼다.
보통 내 시간표는 위와 같은 배치인데, 1시30분까지 출근하면 대부분 곧바로 수업 투입. 방과후 시간은 4시15분 부터 5시인데 나의 다른 업무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도저히 유료서비스인 방과후 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개설한 방과후 과정을 폐강하니 아무도 나에게 방과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국 본인 일이 아니면 사람은 크게 관심이 없다...
사실 나는 급여가 낮아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고,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일은 일대로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은 감당이 쉽지 않았다. 시험지의 양식도 지킬 줄 모르고, 기본적인 관찰도 없이 매년 복붙한 행동특성을 그대로 재활용하면서 수정요구는 듣지 않고 월급은 나보다 배 이상 받아가는 누군가를 보며 화도 났다.
그리고 내가 이전 글들에서 언급한 어지간한 내용들은 실제로 입 밖에 낸 것도 없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어쩔 수 없다"였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하기로 했다.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이 나갈래"
<굉장히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과감히 축약하였음>
1번 항목의 전반적 요약 : 매년 시험지 24장에 시험문제 480개를 만들면서 다른 시험지를 검토해야 하고, 성적처리와 생기부 마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검토 업무를 맡았지만 월급은 호봉대로 못 받으며, 수업 배정의 카오스로 방과후 수당도 못 받음. 아 생각해 보니 급여명세서에 정액급식비 명목으로 적힌 항목도 없었으니 밥값도 못받고 일했다.
(자꾸 내용이 추가되는데 급여 항목도 나이스에서 조회 불가하고, 행정실에서 엑셀 파일로 보내줌)
2. 퇴직을 주저하게 한 요소들
2-1. 학생들
많은 학생분들은 내 수업을 좋아해 주셨다. 나는 그들에게 자식 세대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였고, 부모 세대의 관점에 공감해주기도 하였다. 지식 전달에 앞서 그분들과 쌓은 인간적인 유대 관계는 생각보다 나의 퇴직 결정을 주저하게 하였고, 특히 내가 담임으로 맡은 반은 더욱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나는 퇴직이 결정되고도 마지막 주가 되기 전까지 어느 반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는데, 수행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아는 채로 수행평가를 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2. 동료들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특히 내 또래 교사들이 이곳의 별난 시스템 하에서도 파이팅 하며 본분을 다하는 모습에 형제와 같은 느낌을 가졌고, 각별한 정이 있었다.(표현을 할 수야 없었지만) 비유하자면 전우애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내가 힘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었다. 관리자에게서 탈출하는 것은 기쁨이었지만 전우들을 뒤로하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2-3. 탈주자
학년도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것은 불명예제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맡은 일이 많았던 관계로 내가 이탈했을 때 다른 동료에게 내 일이 떠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도 엄습하였다.
관리자가 난처할 것이라는 점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잘못된 밸런스는 그들로부터 왔기 때문이니까.
2-4. 백수행
내 나이 만 36세. 진작에 자리를 잡았다면 회사의 허리가 되어있을 나이다. 그러나 계속 재계약이 잘 돼왔으니까, 이곳은 업무량이 많으니까 라는 이유로 나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스펙은 그냥 답이 없는 상태였다.
찌질한 생각도 했다. '내가 여자였으면 남편 믿고라도 그냥 박차고 나올 텐데 왜 나는 남자인가' 등의 생각이었다...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3. 타임라인
아무튼 7월 중반쯤 나는 퇴직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부장, 다음은 교감 순으로 면담이 이루어졌고 으레 그러하듯 퇴직 결심을 강하게 주장하고서야 나의 힘듦에 그들은 공감해 주었다. 바꿔 말하면 참고 있었으면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은 형식적이지만 사직서를 교장에게 제출하는 것이었다.
라디오 사연을 제출하는 것도 아니니 사직서는 심플하게 작성하였다.
*관전 포인트 : 8월 31일에 사직하는데 사직서는 7월 31이라고 적혀있음.
내용이 길어질 듯하여 여기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