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토끼가 한자입니다.

첫 수업의 기억

by LEMO

상형문자라고 들어보셨나요?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 있을법한 무슨 독수리같이 생긴 것도 있고 온갖 그림같이 생긴 글자요

대충 이렇게 생긴 거 말입니다...


내가 이 학교에 온 것은 2022년 초였다. 이전에도 다른 학교에서 근무한 적은 있었지만 학력인정학교는 처음이었는데, 당시 나는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신분이 보장된 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익숙한 표현으로는 "기간제 교사"라는 단어가 있다. 더 최악인 것은 내 전공과목이 한문이다. 그런데 더 최악인 것은 뭔지 아는가? 복수전공이 유아교육이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30대 초반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았어야 했는데,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고 그저 그 자체로 그냥 좋다 해버렸다.(이 상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없으면서도 많다. 하지만 일단 지금 언급할 부분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본 개념부터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학생들이 성인인 평생교육시설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수학이나 영어는 어려워도 한문, 정확히는 한자만큼은 빠삭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한자와 한문의 차이 : 글자 낱개를 한자라 하고, 그게 모여서 문장이 되면 한문입니다.


첫 수업 때 일단 이 과목에 대한 정의를 내렸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뭐든지 뿌리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과목명은 한문이지만 어차피 매 순간 한자를 설명해야 하기에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림'이다. 그리고 사람은 문자보다 그림에 더 주목하기 마련이다.


사실 단순히 그림이 주목성을 가졌다고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한자 자체가 그림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한데, 한자 문화권 안에서 한자의 조상이 되는 최초의 글자가 새의 발자국 모습을 보고 만들었기 때문이다.(이 이야기는 사실 전설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사료는 있음)


아무튼 이런 글자를 상형문자라고 한다. 형상을 보고 만든 문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첫 수업 때 상형자에 속하는 한자 하나를 소개하고, 옆에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모양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면 신기해하는 반응이 재미있다.

"토끼가 한자인 거 아셨나요?"

사진이 없어서 그림판으로 그렸는데 칠판은 이것보단 낫습니다.

사실 왼쪽의 한자는 당장 외우라고 쓴 글자는 아니다. 토끼 그림을 보여주며 관심을 얻어보는 것이 목표지만 여기에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에 대한 개요가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수업을 해왔다. 저 토끼는 지금까지 수십 마리는 그렸고, 내가 그린 온갖 그림을 합치면 어쩌면 수업시간에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 교사가 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이 학교에서의 나의 첫 수업 기억이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흘러 어떤 일이 생겨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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