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대사를 뺏어갑니까

뺏어도 되는 것은 마음이면 되잖아요.

by LEMO

식당에서 아이의 부주의로 기물이 파손되었다. 이 경우 식당 사장과 아이의 보호자는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까?


보호자 : 죄송합니다.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요.

사장 : 아이가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죠.


아마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어야 상식적일 것이다. 자기 조절능력이 부족한 아이의 부주의는 보호자의 부주의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내가 부주의로 상대에게 폐를 끼쳤으면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맞고, 상대방은 정상적인 사과를 받았다면 가급적 관용을 베풀면서 보상을 협의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에서 갈등을 억제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소 과정이다.(사실 유치원 때 배운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생각보다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상황은 위에서 사장이 해야 할 말을 보호자가 해버리는 것이다.


보호자 : 아이가 어리니까 이럴 수도 있죠.

사장 : ???


아이가 어리면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존재가 보호자이다.


"아이가 어려서 그럴 수 있다"


는 피해자의 관용으로 해야 하는 말이지, 가해자(고의가 아니었더라도)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며


"나는 보호자의 주의 의무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고요 어쨌든 아이는 실수할 수 있잖아요?"


라는 배째라 식의 의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데다, 이런 사고회로를 가진 사람이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사과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실 위 사례는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실제로 목격한 에피소드이다...


허전해서 넣은 이미지입니다.

나는 사실 평범한 수준 이상으로 '평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보면 고지식해 보인다고 할 정도? 그런데 나는 '평등'의 잣대를 결코 내가 먼저 정하지 않는다.


[먼저 줄 때는 아끼지 않고,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평등이다.

*오해받기 싫은 부분인데 금액을 딱 맞춰서 계산한다는 것이 아니다... 06화 사양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댓가 에서 언급하였음.


그래서 나는 다음 명제에 대해 항상 허용 상태이다.


관계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싸가지를 발현할 수 있었다면 상대방도 나에게 그 정도의 싸가지를 굴어도 괜찮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네가 가능한 것은 나도 되어야 해, 당연히 내가 가능한 것은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인드이다. 만약 이것이 고지식해 보인다 혹은 계산적으로 보인다고 느껴진다면 글쎄... 적어도 나의 주관으로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로남불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같은 상황에서 자신은 예외로 설정하는 마인드


뜬구름 잡는 소리겠지만 나의 평등 마인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다면 갈등이 거의 생기지 않는 이상적인 사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맞지만 그것은 도덕 교과서에 적힌 대부분의 내용들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상에 머무는 마인드라고 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말한 자신의 아이가 저지른 실수를 자신의 의무와 분리하여 "아이가 어리니까 이럴 수도 있죠"를 말했던 보호자, 만약 그 사람에게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또 다른 부모의 아이가 폐를 끼쳤다고 치자. 과연 상대 가해자가 "아이가 어리니까 이럴 수도 있죠"라고 말했을 때 [내로남불]없이 "평등"한 자세로 수용할 수 있을까? 아마 대다수는 생 난리 부르스를 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회 속에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으로 즉,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인간이기에 쉽지 않은 자세이며, 나도 평등에 집착한다고는 했지만 언젠가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일 것이다.


다만 그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 살면서 이따금씩 오는 중대한 순간이면 몰라도 항상 지녀야 하는 자세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최대한(항상이라고는 못함) 평등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주절주절 뭐라고 적었지만 사실 제목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자면 지금부터이다.


식당 손님과 사장의 관계처럼 일시적인 관계에서의 갈등은 대부분 해소되는 시간도 길지는 않은 편이다.(물론 100%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관계가 길어질수록 갈등도 커지는 것을 공감하실 것이다.(그래서 유독 힘든 사례가 가족 간의 갈등)


이런 관계에서도 할 말을 가로채는 내로남불은 여전히 성행한다.


예를 들어 가까운 관계인 A, B 두 사람이 있는데, A는 대부분의 경우 B와 만나면서 물질적, 체력적인 소모를 더욱 많이 하였고(기름값, 밥값, 음료값, 유흥비, 쇼핑값, 운전하는 체력 등) 비대칭적인 소모에 A가 아쉬운 소리를 한 번 하자 B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이렇게 계산적이야(혹은 왜 이렇게 쪼잔해)? 꼭 그렇게 따져야 돼?"


즉, 관계에서 대부분 이득을 보던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을 계산적이라고 나무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B가 평등주의자라서 객관적인 판단이 되었다면 이런 갈등이 없었을 것이니, 그런 사례는 대입하지 않겠음.)



나의 사례도 언급해 보겠다.


동생이 시집가기 전 본가에 같이 있었을 무렵에 나는 다이어트를 선언하고자 가족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요구조건은 부모님은 가급적 가게에서 저녁을 드신 후 집에 오시거나 밤에 집에서 뭔가를 먹을 때 나에게 권유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간식 같은 것은 거실에 보이지 않도록 방 안에 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동생은 "본인이 다이어트하는데 왜 가족들까지 불편하게 하냐" 그리고 엄마는 "애도 아니고 어른이 그런 것도 혼자 조절 못하냐"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서 길게 반론하지 않았다. 어떤 관점에서는 맞을 수도 있으니 수용한 것이다.


동생이 시집을 가고(노림수일 가능성이 높지만 신혼집은 본가에서 걸어서 5분 이내인 같은 아파트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첫째 조카가 하원을 하면 대부분 엄마가 조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씻기고 먹이고 했었다. 둘째랑 같이 있으면 시끄러워진다나...


육아가 어렵다는 원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점은 이거다. 내가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식으로 물러서 있더니, 자신이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자 당연히 해줘야 된다는 식인 것.


당시 상황에 대입하자면 "자기가 육아하는데 왜 부모까지 불편하게 하냐", "부모가 됐는데 그런 것도 조절 못하냐"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더 억울한 것은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는 협조 안 해줬으면서 조카는 왜 맡기냐(왜 맡아주냐)고 해봤자 나만 쪼잔한 삼촌이 된다는 것이다...





자, 여러분이 "평등"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평등은 필요한가요?

•평등은 중요한가요?

•평등은 완전하지 않아도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가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부분은 "Yes"를 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게요.


•당신은 평등을 추구합니까?

•내가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행동을 상대방이 똑같이 한다면 괜찮게 여겨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도 대부분이 "Yes"를 답하길 기원합니다.








*자격증 공부로 당분간 브런치북 업로드 주기 불규칙 예정(스스로에게 하는 공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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