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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Jun 05. 2022

잔상만 남게 되더라도

티티카카 호수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배가 다니는 호수이다. 게다가 제주도의 4.5배나 되는 엄청난 크기여서 호수인지 바다인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끝이 보이지 않는 티티카카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익숙한 바다 냄새가 나는 듯하다.

 잔잔한 호수가 태양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윤슬이 너무나도 예쁘다. 유난히 하늘이 낮게 느껴 구름이 티티카카 호수에 닿을  같다. 아니 호수가 하늘을 서서히 삼킬 것만 같다.

 갈매기 비스무리한 새 두어 마리가 전부인 썰렁한 선착장 주변에는 포장마차 천막 십여 개가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kiosko(매점) 1부터 12까지 아니 그보다  있어 보이지만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 정도의 숫자에 들어가 이른 점심을 먹었다. 이곳 모두 뚜루차(송어) 전문으로 파는 포장 마차이다


 기본 뚜루차부터 마늘을 곁들인 뚜루차, 양파와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뚜루차 등등 온갖 종류의 뚜루차를 맛볼 수 있다. 보통 레스토랑보다 10~15 볼 정도 싸고 크기도 훨씬 크다. 적당한 굽기의 겉바속초 뚜루차는 고기를 먹지 않는 나에게 제격인 메인디쉬다. 더 오래 머물렀다면 뚜루차 종류를 모두 섭렵했을 텐데 무척이나 아쉽다. 오늘은 마늘을 곁들인 뚜루차를 먹기로 하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수가 잘 보이는 위치에(어디든 잘 보이지만) 털썩 앉았다. 물결이 잔잔히 흔들리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본다. 오랫동안 자연을 바라보기만 하면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서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바람소리만 겨우 들릴 정도로 고요한 이 시간이 참을 수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마냥 좋기만 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말 이상하게도 행복한 순간이 오면 일부러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는 듯 찬물을 끼얹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이렇게 남미에서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다가도 돌아갈 날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다시금 이어가야 하는 학업이라던가 취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없으니까. 마치 금기어처럼 의식에 띄우지 않으려 애쓰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 해도 돌아가서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아니다. 뭐든 잘하고 싶고  해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게  중요한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냅다 달려 나가 높은 곳에 도달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인지 아니면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인간의 본성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공기가 점차 쌀쌀해졌음에도 호숫가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마추픽추에서 돌아오는 잉카 레일 안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린 (혹은 도둑맞은 탓) 마추픽추는 물론 지금  순간 눈에 가득 담긴 티티카카 호수 역시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 가서야 제대로 된 카메라를   있다. 지금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 등을 돌리게 되면 끝인 거다.


 그래서 최대한 오랫동안 두 눈에 머물게 두고자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눈을 감아도 호수의 잔상이 푸르게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나는 한동안 호숫가에 떠나지 못했다.






 결국 지금은 맛있는 뚜루차 사진도 아름다운 호수 사진도  손에 없다. 어쩌면 당연지만 호수를 생생히 떠올릴 수도 없게 되었다. 사진으로 남긴 여행지는 "~ 이랬었지", "맞아, 이렇게 생겼었어"라며 고개를 끄덕일  있지만  공백은 일렁이는 잔상만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장면을,  눈에 담으며 행복해했던 순간을 생생히 떠올릴  없는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쓸쓸함, 불안함 그럼에도 벅차올랐던 행복은 하나로 뒤엉켜 깊숙한 공간 속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도르르- 굴러나와  손에 꼬옥 쥐어진다. 가만히 들여다 보기만 해도 여전히 나를 눈물짓게 만들다가도  미소 짓게 한다. 어쩌다    들여다보는 마는 사진과는 압축된 농도가 다르다.

 지금껏 살아오며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운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너무나도 아쉬워질 날들이 쌓이면 감당 못할 그리움에 허우적 될지도 모른다. 사진이나 영상  이상의 기술이 나타나 어떤 형태로든  보관하더라도 결코 채워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있는  그저 행복이 눈앞에 있을 ,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오랫동안  눈에 담아버리는 . 그리고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흘러 보내지 않고 꾹꾹 눌러 가장 순수한 형태로  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 다가 아닐까? 것만으로도 충분할  있는 내가 되는 것도 포함시켜야겠다.


 이 순간 열심히 타자 두드리는 손가락은 훗날 주름진 손을 가진 내가 무척 그리워하게 되겠지?


내 마음 속 티티카카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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