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당근 Jun 18. 2022

햇살 아래 고양이처럼

수크레


 따뜻한 햇살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수크레는  많은 고양이처럼 생활하기에 제격인 도시이다. 수크레는 설탕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키가 작은 하얀 건물들이 나란히 질서 있게 줄지어져 있다. 그래서 하늘이 유난히 푸르르고  느껴진다. 사람들의 얼굴은 구김이 없고 생기 넘쳤으며 눈빛은 달콤할 정도로 다정하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라파스의 팍팍하고  막히는 분위기(실제로 고도가 높기도 하다)와는 정반대이다.  

 라파스는  하루만 있더라도 '얼른 떠야지!'라는 생각이  정도의 황량한 도시였다. 처음 라파스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잊히질 않는다. 움푹 들어간 거대한 구덩이에 황토색 집들이 완전히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오르막에 자리 잡은 집들은 밑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이 아슬아슬했다. 도저히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마추픽추에서 잃어버린 카메라를 대신할  카메라를 사는  외에는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결국 며칠 있지 못하고 라파스를 떠나 수크레로 옮긴 이후에서야 나는 진정한 휴식 즐길  있었다. 처음 수크레를 방문한 목적은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 해서였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물가가  축에 속했기에 스페인어를 장기간 배우기 좋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곳에 많은 스페인어 학원이 밀집되어있었다. 저렴한 수업료 1:1 수업을 신청했지만 나는 예상보다 훨씬 수업에 열성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그저 여행에서 쓸만한 문장을 선생님 따라   말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버렸고 복습은 전혀 하지 않았다.  테스트도 과제도 없는 부담 없는 수업이라 공부를 한다기보다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즐겼다.

 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레스토랑에 간다. 간단한 식사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듯  발걸음은 로컬 시장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내가 남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과일 샐러드(Ensalada de Frutas) 가게가 줄지있다. 과일을 종류별로 전시해둔 작은 가판대 뒤에 머리를 바짝 올리고 흰색 앞치마와 두건을 쓴 여성들이 서있다. 과일 샐러드는 갖가지 과일을 잘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과자로 데코레이션을   생크림을 리고 마무리로 시럽을 뿌린 디저트다. 용기 가득 채워져 있음에도 단돈  원밖에 하지 않는다.

 과일 샐러드를 테이크 아웃하고서는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분수 근처 벤치에 앉는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햇살 아래서 맛보는 과일 샐러드는 어찌나 달콤한지. 하얀 건물과 초록빛 나무가  어우러지는  장면을 보니 눈이  너무나도 편해진다. 과일 샐러드를 순식간에  먹고 나면 동네를 다시 크게  바퀴 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수크레의 정경을 보면 내 마음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되는 기분이다. 다음으로 내가 향하는 곳은 엘파티오라는 유명한 살테냐(남미식 만두) 가게이다. 현지인들도 길게 줄을 서는 이곳 살테냐는 남미에서 먹은 유일한 육류인데 정말이지 나와의 약속을  정도로 맛있었다. 호스텔 방명록에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말에 호기심에  먹은  화근이다. 그래도 욕심내지 않고  개만 사서 호스텔로 돌아간다.

 호스텔 방 안에서 살테냐를  번에 해치우고는 침대에 그대로 몸을 내맡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귀찮아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미소로 깊게 잠이 든다. 수크레를 두고 지친 여행자가 머물기 좋은 도시라고 많은 사람들이  모아 이야기한 이유를 확실히  것만 같은 순간.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나로서는 푹푹 쓰러져 잘만 잤던 그때의 내가 낯설고 신기하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뜻대로 좌지우지할  없는 건데. 무슨 욕심에 이렇게 내려놓지 못하고 바삐 살아가는 건지. 그때처럼 주말에 시간을 쪼개서라도 고양이 타임을 만들어야겠다. 햇살이 들어오도록 문을 활짝 열고 기분 좋게 배부른 상태에서 쿨쿨 잠들어야지.



이전 22화 잔상만 남게 되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