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헛-'
인기척에 눈이 번뜩 뜨였다. 헤드뱅잉을 멈추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가지런히 간식이 놓여 있다. 신기하게도 간식이 나오면 비행기, 버스, 기차 할 것 없이 아주 쉽게 눈이 떠진다. 형제가 많은 집 치고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없는 나도 오래 여행을 하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겼나 보다. 늘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니 냉장고나 찬장에 쌓아둘 수 없어 그날그날 먹을 것을 생각하고 적당히 비축해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토록 후덥지근한 남미에서 보부상처럼 싸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는 마추픽추로 향하는 잉카 레일 안.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산골 마을 정겨운 풍경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페루에는 마추픽추를 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을 걷고 있는 아무나 붙잡고 마추픽추 사진을 보여주면 '아, 여기!'라고 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페루 대표 유적지이다. 검색을 하면 곧바로 나오는 시그니처 사진을 보면 길쭉하게 솟은 크고 작은 세 개의 산봉우리와 그 앞에 펼쳐진 돌무더기 마을이 마치 거대한 숟가락으로 한 스푼 크게 뜨여져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모양새다. 구름이 그 주위를 에워싸면 더욱 신비로운 공중도시가 된다. 남미까지 왔으니 스페인에게 끝끝내 발견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잉카제국의 마지막 요새를 놓칠 수 없지.
마추픽추로 가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보통은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의 성스러운 계곡을 들러야 한다. 그곳에서 잉카 레일을 타고 마추픽추와 인접한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버스를 타야 마침내 마추픽추를 만날 수 있다.
여행의 중반을 훌쩍 지난 시기라 워낙 멋진 경관들을 많이 본 나로서는 성스러운 계곡 정도야 큰 감정의 동요 없이 편하게 둘러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가이드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이것저것을 설명해주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눈치였기에 "great!"이라며 적당한 리액션을 보여줘야 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을 실망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적당히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출발할 시간이 되어 버스를 올라타려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한 커플을 불러 세우더니 "이 친구도 마추픽추에 간다는데 같이 가줄래?"라고 물었다. 누군가와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그것도 커플과) 당황하여 손사래 치며 "노노노"라 외쳤지만 커플은 흔쾌히 "Yes."라고 답했다.
가이드가 어떤 생각의 경로로 나를 커플에게 넘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의 눈엔 내가 누군가의 보살핌이 무척이나 필요해 보였나 보다.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할 때도 유독 내 옆만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래 봬도 혼자 두 달 넘게 배낭여행을 했던 나인데 말이다. 얼떨결에 눈치 없이 커플 사이에 끼게 되었다.
걱정과는 달리 커플은 나를 억지로 떠맡은 짐짝처럼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손짓하며 맞이해주었다. 브라질에서 온 두 사람은 마치 잡지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처럼 길쭉하고 조각같이 생겨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움베르도는 연한 갈색 머리에 다부진 몸을 가졌고 카밀라는 금발에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움베르도는 자주 장난을 치며 밝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카밀라는 감당 안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는 늘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그를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런 커플 사이에 있으면 무척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를 불청객으로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해준 덕분이다. 잉카 레일이 역으로 도착하여 우리는 함께 올라탔다. 하지만 좌석이 달랐기에 이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 생각하고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옴베르도가 도착하면 서로 기다려주자고 했다. 얼떨결에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기 위해서는 잉카 레일로 3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웬만해선 쪽잠을 자지 않는 나라도 여행에서는 쉽게 방전이 되는지 엉덩이를 붙이기만 해도 꾸벅꾸벅 잘도 잔다. 여러 번 졸다가 깨는 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바깥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밤거리를 헤치며 호스텔과 마추픽추행 버스표를 구해야 한다는 것에 벌써부터 피로감을 느꼈다. 여행에서는 먹는 것은 물론 잘 곳도 그때그때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잉카 레일에서 내리자 약속한 대로 움베르도와 카밀라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키가 커서 어둠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나에게 호스텔을 따로 구하지 않았으면 자신들이 예약한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잉카 레일뿐 아니라 다른 루트로 온 많은 여행객이 쏟아져 나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가득 찼다. 맞은편에는 마치 대치하듯이 호스텔 주인들이 호스텔명과 예약자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하늘 높이 들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인파가 몰려 금방 찾기는 힘들거라 생각하며 군중들 속에서 고개를 겨우 빼고 두리번거리는데 옴베르도와 카밀라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저어기 멀리서 보였다. 두 사람에게 알려주니 그들의 얼굴에 있던 피곤한 기색이 싹 가시고 환한 미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걸 보니 왠지 큰 미션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우리는 호스텔 주인의 도움으로 버스표를 구한 뒤 호스텔로 들어갔다. 함께 하니 일이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었다.
이들이 선택한 호스텔은 싱글룸 50 볼로 쿠스코의 두배가 넘었다. 역시 세계 어딜 가나 관광지는 바가지가 심하다. 게다가 마추픽추를 품고 있으니 더욱 의기양양할 만하다. 더 저렴한 곳을 찾아볼까 잠깐 고민하다가 어딜 가나 비슷한 가격일 것 같았고 무엇보다 두 사람이 마음에 들기도 해서 그냥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옴베르도가 짐을 두고 주변을 둘러볼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흔쾌히 "오케이" 해버렸다.
짐을 두고 립밤만 간단히 바른 뒤 숙소 아래로 내려가니 레스토랑에 동양인 아주머니, 아저씨 여러분이 있으셨다. 익숙한 옷차림에 천천히 다가가 보니 한국어가 선명히 들려왔다. 그에 확신을 가지고 다가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내 존재를 확인하시고는 무척 놀라워하셨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동네 아이를 세월이 흘러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식사를 시켰다고 같이 먹자고 권해주셨으나 친구와 선약이 있다고 정중히 거절하였다. 혼잣말을 거의 안 하는 나로선 오랜만에 한국말을 쓰니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남미라도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한국인 무리를 만날 수 있구나.
광장으로 나가니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고 늦은 밤임에도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스피커가 어찌나 큰지 광장이 왕왕 울러 댔다. 레스토랑이 광장을 빙 둘러쌀 정도로 많았는데 하나같이 잉카 스타일로 알록달록 멋지게 꾸며놨다. 옴베르도가 권한 페루 대표 칵테일 피스코 샤워를 마시며 당구장에서 스누케라는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피스코 샤워는 상큼한 레몬맛으로 흥을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비록 한 볼 밖에 넣지 못했지만 전혀 기분 다운되지 않고 신이 났다.
움베르도 역시 흥이 올랐는지 광장 한복판에서 삼바라며 웃긴 춤을 보여줬는데 카밀라는 질색하며 웃으면서 "저건 삼바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우리는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내일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를 가는 게 아니었더라면 새벽까지 놀 기세였다.
숙소로 가자 여전히 레스토랑에 한국인 어르신들이 있으셨다. 어르신들도 남미에서의, 마추픽추 아래에서의 밤은 쉽게 잠들기 어려우셨나 보다. 나는 옴브레도와 카밀라를 소개해 드렸다. 두 사람은 아주 정중히 내가 그러했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드렸다. 마치 나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어쩌면 누구라도 기꺼이 그렇게 했을 수 있지만 한국 어르신 분들께 예의를 차리는 두 사람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조금 오버스러울 수도 있으나 감격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침대에 눕자 창으로 살며시 들어온 달빛이 얼굴을 비췄다. 오늘 움베르도와 카밀라가 나와 함께 보내준 시간 그리고 한국 어르신들께 보여준 친절한 미소가 기억나는 따스한 달빛이다.
아직도 광장에서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지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날 보게 될 마추픽추에 대한 기대도 더해져 더욱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누군가 팍-하고 밀쳐서 깨운 것처럼 깜짝 놀라며 일어나게 된다. 이건 여행이 나에게 남긴 몇 가지 흔적 중 하나이다. 알람보다 효과적이므로 늦잠을 자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줄 수 있다. 다만 아주 편하게 스르르 눈을 뜨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다.
여행에서는 경계태세를 뾰족하게 세워야 한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아~ 어쩔 수 없지'하며 느긋이 기다릴 수 있는 한국에서와는 달리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와 약간의 짜증을 더해야 한다.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 여유롭게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중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인색하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있지만 어쩐지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달까. 그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터미널에서 앉아 버스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숙소 역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실을 선점한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빠트리는 물건이 없도록 꼼꼼하게 짐을 챙긴다. 늦장을 부리다간 꼭 뭔가 하나씩 두고 오게 되니까. 콜롬비아에서 큰 맘을 먹고 산 후안 발데스 보온병 역시 그런 물건 중 하나이다.
아무리 장기 여행이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신세이기에 스스로 정한 약속을 잘 지키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곳이 낯선 곳이라는 생각,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기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언제든 쉽게 깰 수 있는 얕은 수면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육체는 잠들고 유체이탈을 한 영혼이 보초를 선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이번에도 번뜩 눈이 뜨였다. 여행 중 단 한 번도 늦잠으로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다. 어쩌면 여행이 꽤나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새벽 버스를 타기 위해 간단한 소지품만 검은색 작은 백팩에 넣었다. 움베르도와 카밀라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서 더욱 늦장을 부리면 안 되기도 하지만 이번 버스를 놓치면 또다시 다음 버스표를 구하거나 하룻밤을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셋은 비몽사몽 한 눈을 비비며 숙소를 나섰다. 아직 어두운 새벽. 야시장처럼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추픽추에 발을 디디면 내려앉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둡고 고요한 버스 안. 사람들이 곯아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 들렸다. 길이 고르지 못해 덜컹덜컹 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모두가 깊이 잠들었다.
여행 중 마추픽추를 다녀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실제로 보니 어땠는지 묻자 그 사람은 '사진을 하도 많이 봐서 실제로 보면 크게 감흥이 없다'라고 답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이 전부라고 말하는 걸 보니 푸쉬시 맥이 빠져버렸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라는 허탈한 마음과 '그래도 마추픽추인데'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공존한다.
버스가 입구에 다다르자 서서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오픈런을 준비하는 대기줄처럼 버스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직 고요한 새벽의 정취를 가득 담은 마추픽추가 한눈에 보였다.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나왔고 나도 모르게 '우와' 감탄을 연발하며 조심스럽게 마추픽추 안으로 들어섰다. 이 안에 가득 찬 공기는 저 아래에 있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나 자신이 이질적인 존재임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순수한 공기이다.
뷰 포인트에 올라가 한눈에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파도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햇볕이 찬란하게 드리우자 서서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집터들과 생생하게 제 색을 뽐내는 잔디와 나무 그리고 그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명확히 보였다. 어느 한 가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투박한 구조물들 조차 하나의 작품처럼 멋지게 펼쳐졌다.
누군가 나에게 마추픽추는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마추픽추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오백 배는 더 멋지고 감동적이었어'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페루 사람들은 수학여행으로 마추픽추에 온다고 하지만(우리나라 불국사 느낌일까) 남미가 아닌 머나먼 외국에서 온 나와 같은 사람들은 신대륙의 발견까지는 아니겠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일 것이다. 마치 인디아나 존슨이 된 기분이랄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로 편히 올라왔지만 직접 산을 타고 텐트를 치며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기쁨을 느끼겠지? 이런 방법이 있는 걸 알았다면 트레킹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예일대 교수 하이럼 빙엄은 이런 말을 했다.
"Few romances can ever surpass that of the granite citadel on top of the beetling precipices of Machu Picchu, the crown of Inca Land."
"잉카 땅의 왕관, 마추픽추의 들쭉날쭉한 벼랑 위에 우뚝 선 화강암 도시의 낭만보다 더한 낭만은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침략에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한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가설만 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는 전염병, 식량부족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든 비극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멋진 이곳에서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움베르도와 카밀라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며 같이 조인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혼자 둘러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순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데 어딜 가나 가이드 무리가 있어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묘미가 있다. 슬쩍 가이드 말을 들었을 때 마추는 old, 픽추는 mountain을 뜻하여 결국 마추픽추는 오래된 산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뭔가 대단한 의미가 담긴 줄 알았던 조금 허무해져 버렸다.
정처 없이 발걸음을 움직이다 어젯밤 만났던 한국인 어르신들이 잔디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마추픽추는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다). 또다시 먼저 다가가 인사를 드리니 역시나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깎아 놓은 사과를 나눠 주셨다. 그중 한 분이 "아휴 여기까지 혼자 올 생각을 다하고~ 기특해라"라며 칭찬해주셨고 다른 분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봐 주셨다. 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 예민하게 곤두섰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뷰 포인트로 다시 올라가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밥을 먹고, 뛰어놀고 또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이들은 우리의 존재를 상상도 못 했겠지.
혼란스러운 바깥세상을 피해 몸을 숨기면서도 일상을 살아갔을 이들을 떠올려 본다. 결국 Life goes on. 우리와 똑같이 소중한 일상을 보냈겠지? 이들은 스페인군에게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결국 쇠퇴에 이르는 마당에 무슨 상관인가 싶다가도 이 아름다운 성지가 누군가의 손에 망쳐지지 않았다 사실이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안도의 한숨을 내 쉬게 만든다.
마추픽추 하늘이 이토록 청명하고 좋은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한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푸르른 하늘 아래 이질적인 존재로서의 기분을 마음껏 느낀다. 그러면서 사라져 버린 것과 곧 사라질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이 유적처럼 비석만 남을 뿐 육안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비석마저 무성한 풀 사이에 가려질지도 모르지.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쇠퇴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망가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