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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Apr 19. 2022

믿음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뽀얀 창을 통해 침보테 터미널의 작은 슈퍼마켓 속 앳띈 내 모습이 보인다. 내 곁에서 주인아주머니와 손님 두 분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여 엉망진창인 말을 찡그리는 표정 없이, 오히려 싱긋 미소를 띠며 귀 기울여 준다.

 

"아침에 와라즈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렇게 어두운 새벽에 덜컥 도착해버렸어요. 이곳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웃으며 맞이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정확히 전달될 리 만무한 말이지만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장면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슈퍼의 문을 열고 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단번에 ‘나는 밤새 이곳에 머물게 될 거야'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이 불편하거나 더 나아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대로 문을 닫고 나와 터미널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을 거다.

 

 하지만 이들은 창을 통해 새어 나온 노란 불빛보다 훨씬 더 따뜻한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나를 온몸으로 환대해주었다. 어디로 날아갈 새라 꼭 껴안아주었다. 그 덕에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슈퍼 안에서 안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 역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환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고, 그들을 따라 움직이고 함께 머물며 같은 방에서 쿨쿨 잠을 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누군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곤히 자는 내 목을 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낮시간 동안 쌓인 고단한 마음을 내려두고 깊은 밤 여느 때 보다 더 포근히 잠들 수 있는 건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 함께 외로운 시간을 버텨줄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런 믿음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모여 나는 동료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챙김을 받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짐과 함께 무거운 긴장감을 풀어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은 ‘믿음’이라는 것을 그 무엇보다 따스한 방법으로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모든 게 어렵다 느껴질 때 여행을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 모든 게 간결해진다.  

결국 우리는 믿음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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