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정치가 앙드레 말로가 한 말이다. 그 시절 나는 이 문구를 가슴 깊이 새겼다. 언젠간 꿈꿔온 모습으로 멋지게 채색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매해 꾹꾹 눌러쓴 버킷리스트에는 빠짐없이 배낭여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에 로망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건강한 신체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건전한 호기심을 가진 젊은이라면 그럴 만하지 않을까? 젊을 뽐낼 수 있는 에너지와 삶에 대한 긍정성이 활어처럼 펄떡이며 살아 움직였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국립공원이었다. 이곳은 우연히 카페 게시판에서 ‘브라질의 사막. jpg’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세상에!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외국의 멋진 명소 사진을 볼 때마다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남미의 첫 여행지로 이곳에 가게 되다니. 처음부터 끝판왕을 만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멋진 곳을 가장 먼저 가면 나중에 가는 곳은 어디든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으니 이제 설렁설렁 다녀야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텐션이 낮아질 거다. 혹은 반대로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클 수도 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여 빛을 잘 이용해서 각도를 잘 잡거나 살짝 보정만 해도 실제보다 훨씬 근사해 보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런 잡념과는 관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공항이 있는 리우데 네이로로 가야 한다. 바네사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리우에서 같이 하룻밤을 묵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탔고, 3시간이 걸려 도착한 리우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 Botafogo로 넘어갔다. 바네사는 터미널 근처는 위험하기에 얼른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처음 방문한 호스텔은 입구부터 우중충했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도미토리에서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낡고 오래된 방에 이층 침대 여러 개가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억지로 구겨 넣은 듯 방 전체가 침대로 가득 차 있었다. 환기가 잘 안 되는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직원은 우리 반응이 놀랍지도 않은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그는 마치 교도관처럼 느껴졌다. 바네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본인이 돈을 낼 테니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바네사가 책에서 찾은 두 번째 호스텔은 건물 전체에 빛이 환히 들어오고 하얗고 깔끔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소품들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밝고 쾌활한 스태프들로 인해 호감도가 더욱 상승했다(여기가 이후 내가 묵게 될 숙소 중 가장 좋은 곳이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짐을 풀었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져 곧장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나선 은행에서 돈을 뽑아 1,200달러로 환전하였다. 달러는 어느 나라에서든 통하니 필요할 때마다 그 나라 돈으로 환전하면 된다. 큰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으니 바짝 긴장감이 생겼다.
다음 날 바네사가 떠나고 홀로 공항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해둔 택시가 숙소 앞까지 와있어 몸은 편안했으나 마음은 전장을 나서는 병사 같았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배낭은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물건을 몇 개 빼야 하나 고민했지만 여행 도중 필요한 물건이 없어 당황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몽땅 챙기기로 했다. 등 뒤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앞으로는 작은 배낭을 메었다. 작은 배낭 속에서는 여권, 달러, 카드 등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것들을 넣어두었다.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지금 신분은 배낭여행자이니까 주변 시선이 크게 의식되지 않았다.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국립공원이 있는 바헤이리냐스로 가기 위해 먼저 상루이스를 거쳐야 했다. 리우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거리이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도까지 고작 한 시간이 걸리는 걸 감안해보면 브라질의 크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콧수염이 난 아저씨가 앉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어색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복도를 걸어오면서 기내 간식을 나눠주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간식을 주는 걸 보니 잠들지 않길 잘했다. 간식은 세 가지 종류의 스낵이었는데 어떤 걸 먹고 싶은지 물었을 때 민망했지만 ‘todo(토도, 모두)’라고 대답했다. 승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종류별로 스낵을 챙겨 주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시 졸고 눈을 떴는데 맞은편 의자 주머니가 불룩했다. 알고 보니 옆자리의 아저씨께서 간식을 챙겨주셨던 거다. Obrigada(오브리가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니 멋쩍은 듯 웃으셨다. 간식을 모두 먹지 않고 잘 챙겨두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기 위해 가방에 넣었다. 왠지 여행 도중에는 비상식량을 쟁겨둬야할 것 같다. 이미 호스텔에서 조식으로 나온 토스트도 고이 싸서 가방에 넣어두었지만.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나오니 생각보다 공항 안은 무척 한산했다. 덕분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프런트에 여자 직원 한 분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서든 짤막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심히 설명해주신 덕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싼 호스텔과 택시 정류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감사하게도 직원분께서 직접 택시를 잡아주시곤 기사님께 목적지를 알려주셨다. 택시는 20분도 안 걸려서 숙소 앞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설프게 흥정을 했지만 아저씨는 아주 곤란하단 표정으로 안된다고 말씀하셔서 곧바로 단념했다. 심기일전으로 호스텔에 들어가서도 흥정을 시도했지만 스태프가 아주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흥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흥정에 영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여행을 하면서도 흥정에 성공한 기억은 없다.
호스텔의 첫인상은 길을 잃어 잘못 들어간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인숙 같았다. 왠지 오래된 역사가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풍겨졌다. 입구는 철창으로 봉쇄되어 있어 주변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스태프가 오른쪽 거리 끝을 가리키며 저쪽에는 마약을 파는(혹은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절대 가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스태프가 여성 전용 도미토리로 안내를 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같은 방에 묵는 사람이 있는지 묻자 그는 프랑스에서 온 여자가 한 명 있다고 대답했다. 문을 여니 방안은 어둡고 습했다. 1990년대 유럽 영화 속에서 나올법한 스타일이다. 늘 상상해오던 호스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룸메이트는 어디에 나가 있는지 짐만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
배낭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빈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위에서 팽팽팽 돌아가는 환풍기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외딴섬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달까? 너무나도 낯선 이곳. 천장에 가족들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