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 때
흔히 이야기 속 먼 길을 떠나는 주인공에게는 그럴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빨간 모자부터 해리포터까지 그 목적의 경중을 떠나 아무 이유 없이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들과 안락한 보금자리를 두고 험난한 길을 떠나는 주인공은 없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겪게 될 시련과 고생 끝에 그가 간절히 바랐던 것을 찾게 되는 엔딩을 기대한다. 그가 얻게 되는 것은 그 힘든 과정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나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는 내 안에 가득 넘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는 삶에 지쳐있었고, 그러한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대부분의 20대가 그러하듯 나 역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며 졸업과 취업 문제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특히나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버거워하는 반면 이상적인 삶에 대한 기대는 놓지 못하는 철부지였기에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또 미뤘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의 관대함(혹은 무심함) 덕에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질문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나는 고향에서 가족과 살며 꽤 적성에 맞는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고, 편입 공부라는 명목으로 학생 신분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소가 호황기일 때 외국 선박 회사들이 거제에 많이 들어왔다. 내가 일한 샌드위치 가게는 외국인 손님이 주를 이루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작은 봉고차에 손님들이 우르르 내려와 "Hi.", "Hello." 친근하게 인사하며 자리를 꽉 채웠다. 나는 카운터를 보다가 샌드위치가 나오면 서빙을 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에 로망이 있던 나는 외국인에게 둘러싸여 일하는 것이 마냥 신났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가게였으나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나의 소박한 환상을 채워주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사실 거의 비슷한 말만 반복하는 수준이었으나 그마저도 즐거웠다.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전날 인터넷으로 검색해 메모해 두었다가 용기 내 먼저 말을 걸곤 했다. 이들은 나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사장님은 40대 여자 사장님이었는데,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남자 사장님이 가게를 양도하면서 맞이한 두 번째 사장님이다. 나 역시 가게와 함께 팔린 것 같은 묘하고 재밌는 기분이 들었는데 다행히 이전 사장님보다 편하고 친근했다. 아르바이트에 만족하고 재미를 붙이는 것과 반비례하여 편입 준비는 점차 관심 밖이 되었다. 사실 나에게 편입 준비는 어떤 결정을 유예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도저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당시 나는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매일같이 자기 계발서와 여행기를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와 꿈같은 여행기는 나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그 무렵의 나는 어떤 단단한 틀에 갇힌 것 마냥 결국 그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이이 며, 그들처럼 되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새로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안전한 세상 속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평범하고도 초조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바네사를 만난 건 초겨울이었다.
막 출근하여 가게 안에 들어오는데 휴지로 코를 막으며 훌쩍이는 체구가 작은 외국인이 있었다. 나에게도 부쩍 쌀쌀하게 느껴진 공기는 브라질에서 온 그녀가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장님은 감기약을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얼른 약국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바네사에게 약을 사다 주었다. 바네사는 어설픈 한국어로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네사와 나는 친한 손님과 점원 사이에서 깊은 속 이야기까지 하는 친구사이로 발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영어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게 신기하다. 우리 사이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꿈을 바네사에게 말할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여행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와 만날 때마다 항상 빼놓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주로 저녁에 조선소 불빛이 보이는 산책로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아름다운 배경과 선선한 바람이 내 마음을 자꾸 울렁이게 만들었다. 내 마음속에서 표현되지 못한 채 고여버렸던 것이 봇물 터지듯 넘쳐흘렀다. 바네사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수많은 의심을 뒤로한 채 확신에 차 신나게 재잘거릴 수 있었다. 마치 정해진 미래를 이야기하는 유능한 예언가처럼.
어느새 바네사의 한국 근무기간이 끝나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떠난 후 한동안 나는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다. 바네사가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희망이 가득했던 시간이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곧 그녀의 부재에 적응했다. 바네사에게 이야기했던 내 꿈을 허공에 주술처럼 되뇌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내 안의 질문이 한 가지의 문장으로 압축되었을 때 나는 답을 내려야만 했다. '언제까지 내가 만든 환상 속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물론 영원히 그럴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뒤이어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엔 더 늦어지기 전에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삶에 큰 공백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또다시 '이대로 앞으로 나가도 될까?'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내 발목을 잡았다. 내 꿈을 확신에 찬 채 떠들어댈 순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에 대해선 어떤 것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질문의 연속이었다.
다시 시작되는 수많은 의문 속에서 나는 앵무새처럼 ‘떠나야만 한다’는 답 이외에 다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마저 그저 도망치고 싶은 나약한 마음에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과연 확신할 수 있는 게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답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단지 이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은 오로지 나의 힘으로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