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지만 어떤 기대가 있다면
나는 불현듯 2년 전 자주 방문한 카페에서 '브라질의 사막'이라는 글을 스크랩했던 기억이 났다. 이 사막은 하얀 모래에 군데군데 투명한 호수가 있는 신비로운 곳이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경관은 전율이 올 정도로 내 마음 깊숙이 각인되었다. '내가 죽기 전에 실제로 이런 곳에 갈 수 있을까?'라고 선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자 저장했었다. 오랜만에 스크랩해뒀던 글을 클릭해 보니 그 사막은 여전히 현실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상상 속의 나는 저 사막 한가운데를 유유히 걸으며, 발바닥으로 따스한 모래를 느낀다.
상상을 하는 건 언제나 쉽다. 다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럴 때 나는 쉽게 도망갈 구멍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실 배낭여행을 계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미 여행을 떠나기 3년 전, 이탈리아 북부부터 남부까지 여행하는 큰 포부를 가지고 비행기 표, 숙박, 유레일 기차표 등 굵직한 기본 코스는 모두 예약해 두었다. 시청에 가서 첫 여권을 발급했다. 모든 여행 준비를 끝마쳤지만 출국일이 다가오자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씩 떠올랐다.
가장 큰 이유는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닐 정도로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가 혼자 외국을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할 때였다. 국내 여행조차 혼자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배낭여행 위험 사례들'은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순 절도부터 납치, 마약, 성매매, 살해 등 무서운 사건들이 줄줄이 굴비 엮듯 이어져 나왔다(굳이 이걸 검색해 보는 나의 심리는 뭘까). 그리고 나는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친하게 어울릴 자신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지만 그래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어렵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국내 여행을 혼자 다니고, 영어를 좀 더 잘하게 된 후에 배낭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모든 예약을 취소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눈을 가리면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아이처럼. 내가 결정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작도 끝도 내가 했으니 분풀이할 수 있는 곳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간절하지 않아',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순간 나는 뭐든지 버리고 도망쳤다. 항상 저울질하며 어떤 선택에 있어 손해를 피하는 것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쉽게 전자를 선택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얼마나 간절해야 행할 수 있으며, 무엇이 준비가 되어야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 답은 나 자신마저 쉽게 속일 수 있으니깐.
결국 나는 현실에 맞설 힘이 부족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두려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망간다면 나는 영원히 이런 선택만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영어실력이었고, 국내여행 역시 혼자 한 적도 없는 상태에서 남미로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무엇이 간절해서 그때는 망설였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란 희미한 기대만 있을 뿐이었다.
브라질의 사막을 떠올린 이후 이곳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를 '브라질 사막' 하나만 보기 위해 가는 것은 부담이 아주 컸다. 그래서 내가 갈만한 다른 여행지도 찾기 위해 처음으로 '남미'라는 대륙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당시 나는 남미라고 하면 '삼바' 밖에 모를 정도로 이곳에 대해 무지했었다. 클릭을 하니 우유니 소금사막, 로라이마 산, 마추픽추, 이스터섬, 갈라파고스, 아마존 등 매력적인 명소가 가득 나왔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사진들을 보며 반짝이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이곳에 내가 갈 수 있다면!'
무작정 남미에 도착해서 바로 배낭여행을 시작하기보다는 몇 개월 동안 스페인어를 공부하다가 여행을 한다면 마음이 좀 더 놓일 것 같았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를 알면 혼자 여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배낭여행만 하는 건 위험요소가 크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배낭여행 난이도로 치면 최상급에 남미를 혼자 긴 시간 동안 여행할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여행 이후의 삶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 새로운 언어 하나쯤은 알고 있는 게 유용할 거라 생각되었다.
최종적으로 남미를 가고자 결정한 것은 이곳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바네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 이후로도 우리는 메일을 계속 주고받았다. 남미에 가고자 마음먹은 뒤 곧장 바네사에게 메일을 썼다. 나는 메일에 남미 여행 계획과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부분 조심스럽게 써서 보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얼마 안 되어 바네사에게 답장이 왔고 그녀는 나에게 열린 마음이 있다면 이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응원해 주며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했다. 그리고 스페인어 학원을 함께 알아봐 주며, 자신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알기에 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바네사에게 큰 감사함을 느꼈지만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되돌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부탁인지 마음 깊숙이 느껴진다. 어떻게 나는 그런 어려운 부탁을 그녀가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또 바네사는 왜 대가 없이 나를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을까. 아마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