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책을 쓰는 인구는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유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아우르는 대부분의 영역에서이제는 누구나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고, 출판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 나 역시 글을 짓는 작가의 부캐를 넘어서 최근에는 출간까지 직접 해서 `책`이라는 상품을 직접 생산한 편집자 + 발행인의 캐릭터까지 추가하여 나의 부캐력을 한 단계 레벨업시키는 경험을 하였다.나도 이 경험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글만 쓰면' 책은 그냥 쉽게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지랭이 같았던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꼭 해주고픈 말이 있다. 글을 쓰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품이 드는 것이 책을 엮는 일이라고.'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유명 편집장이 괜히 그렇게까지 악랄한 직업인이 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퀄리티는 지독성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1. 인풋 이야기 (몇 시간의 노가다로 환산?)
나는 사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드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떤 때는 그야말로 어느 퇴근길 환승 후 한 30분도 안 되는 길에 한 편을 뽑아 바로 업로드까지 하니 말이다. 물론, 쓰는 행위 이전에 오래도록 살면서 짬짬이 꽤나 깊은 수준으로 생각해 두기도 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단 올리고 나서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일필휘지로 갈겨 내려가던 때에는 보이지 않던 토씨나 불명확한 문장 등을 짬짬이 수리(?)하는 일은 매우 빈번하다. 쓰기+퇴고에 드는 평균적인 글 한 편의 시간이라면 대충 2시간 잡으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금번 책 집필 결과 추천사를 빼고 320페이지, 약 60여 편의 에피소드가 추려졌었다. 애초에 각각의 글을 쓰는 데에만 약 120시간이 투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글들을 모아서 다시 다듬는 데에만 거의 비슷한 시간이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글이 작성되던 시점이 각각 다른 것을 하나의 시점으로 통일해야 했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단편으로 작성했던 글들을 같은 스타일과 비슷한 길이로 통일감 있게 윤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새로 쓰는 것만큼이나 품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보면 볼수록 고치고싶은 문장은 끊임없이 계속 나오게 되어 적당한 선에서 끊는다는 것도 정말 필요한 기술이었다. 결론적으로 책에 들어간 컨텐츠에만 최소 240시간 정도 투여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러스트를 직접 그리지만 않았지 들어간 모든 일러스트의 컷, 구체적인 동작 등까지 직접 다 기획하고, 표지의 디자인 및 컬러에 포함된 RGB 값, 폰트, 표지/내지 종이 재질 선택 및 수십 버전의 인쇄 테스트마저 (간간이 자문도 구해가며) 내가 직접 다 했으므로 못해도 디자인 및 인쇄에만도 정말 최소로 잡아도 60시간 이상은 들어갔을 것이다. 300여 페이지에 나의 정말 금쪽같은 300여 시간이 녹아있다.
2. 아웃풋 이야기 (그래서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랬고, 누구나 궁금할만한 주제일 것이다. 책 한 권 팔면 얼마나 남느냐고? 내가 듣기로 신인 작가의 경우 인세는 많아도 책값의 한 자릿수 퍼센트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 그래도 이 저출산/비혼 시대에 얼마나 팔릴지도 모르는 책을 수백수천 권씩 미리 찍어두고 파는 기존의 출판 방식은 재고 보관 측면도 그렇지만, 세상에서 평생 한 번 제대로 쓰이지도 않을 지도 모르는 엄청난 쓰레기를 대량 생산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기에 내가 중시하는 환경적인 리스크 측면에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따라서 내 책은 주문하면 그때 하나씩 인쇄하여 배송하는 주문형 인쇄(POD, Publish On Demand) 방식으로 제작되어, 주문한다면 배송 시간 뿐 아니라 인쇄/제본 시간이 추가되어 최소 며칠은 더 걸릴 것이다. 출판사를 끼지 않아 중간 마진이 덜 떼일 것도 같아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낱권 주문형 인쇄(POD)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소량 생산으로 인해 인쇄 단가가 높으므로 결국 마찬가지이다. 출간 최종 책값을 초기 텀블벅 펀딩가 15,000원으로 시뮬레이션해보았더니 교보나 yes24 등 외부 유통 판매 시, 내게 오는 수익이 무려 55원(네, 550원도 아닌 55원이 맞습니다)으로 나왔다..... 작가로서의 내 몸값을 신인 작가 수준의 인세로라도 맞추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책값을 올려 책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외부 일반 서점이 아닌 출판 등록을 대행해준 부크크 사이트에서 직접 주문이 들어오면 그래도 싼 커피 한 잔(내가 좋아하는 라떼까지는 못 마시고 아메리카노) 정도는 생길 수준이다. 하지만 부크크를 아는 사람 그리고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출판계는 어쩌면 연예계와 비슷한 수익 구조가 아닌가 싶다. 수많은 새싹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결국 빛나는 스타가 시장의 거의 모든 파이를 가져가는 꼴이다. 그 성공 방정식에는 장르와 타이밍 등등 차마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내 300 시간을 지금 나의 시장 몸값이 아닌 최저 시급으로만 계산해도 300만 원, 그 돈을 현재 나의 미국 주식 수익률에 대입해보면 최소 400만 원 이상이다. 나는 금전적인 기회비용으로만 보면 '정말 최소로 잡아도' -300만 원에서 시작하는 꼴이다. 광고 팍팍해서 많이 팔면 되지 않느냐고? 싼 온라인 광고를 한다고 해도 CPI(Cost per Installation) 즉, '앱 하나 설치하게 만드는데 들어가는 광고비' 환산 금액보다도 낮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그 이상의 광고비를 지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행동일까 솔직히 의문이 든다.
3. 가성비 그 너머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익성을 분명 알았음에도 나는 왜 출간을 굳이 감행했을까? 그것은 로또 같은 심정으로 한갓 비전문가의 육아책으로 밀리언 셀러가 될 거라는 허황된 꿈도 아니었고, 이름 석자 세상에 남기는 것에 집착해서도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필명으로 출간했다!?) 이렇게 육아가 힘들다 힘들다 징징대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에서,'애가 아무리 어려도, 조금이라도 요령 피우고 자신도 적당히 챙겨가며 맘 편하게 육아해도 괜찮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출산을 준비하면서 그리도 원했지만 찾지 못했던 책을 누군가는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식 출간 전 텀블벅에서 사전 펀딩을 진행했을 때에도 결국 나는 '배송비+인쇄비+책갈피 굿즈+텀블벅 수수료'에다 후원자 별로 플러스알파 선물 하나씩은 추가하여, 통 큰 추가 후원금을 보내준 일부를 제외한 거의 전원에게 마이너스 장사를 하였다. (두 권씩이나 후원해 준 50%의 후원자들에게는 책 한권 값에 준하는 록시땅 핸드크림을 추가로 하나씩 같이 보내기도 했다.) 후원 과정을 통하여 나는 내가 살면서 더욱 신경 썼어야 할 사람들을 가리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가치가 상당했다. 애초에 출간이라는 것은 돈 벌려고 하는 짓은 아니었던 게다. 그래도 물론 시간과 노력이 무지하게 들어간 만큼,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많이 팔리면 당연히 더 좋겠다. 이왕이면 부크크에서 팔리면 그래도 더 좋긴 하겠다.^^ 부크크에서 팔리는 날에는 기념하여 특별한 커피를 내게도 한 잔씩 대접해야겠다.
정작 출간은 해놓고 나는 막상 여기저기 알리지도 못했다. 사실 최근에 이 일은 하나도 챙기기 어려울 정도로 개인적으로 너무 바빴다. 지난달 말, 우리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파봤는데 그게 대학병원 응급실 + 입원 3일짜리였다. (보카 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후두염)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랑 발목 인대가 거의 파열되어 출근 전후를 포함하여 주말까지 육아 및 집안일이 온통 내 차지가 되어 도대체 숨 쉴 틈이 없었다. 심지어 새벽에 일어나 아이 식판뿐 아니라 '신랑 도시락 통 세척+ 도시락 싸기' 과제까지 종종 추가되기도 하였다. 회사에서는 복직해서 팀 발령 받자마자 당장 2달여만에 오픈하는 일정이 이미 박혀있는 주요 하반기 개선 프로젝트리드 및 운영 전략 보고, 완전 다른 주제의 제휴 전략 보고까지 부사장 직보 건을 두 개나 전담하는 미친 업무 쏠림으로 일복은 터져나갈 판이었다. 사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아이 입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이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요즘 아이를 재우면서 다음날 보고서 스토리 라인을 고민한다. 이렇게 '대한민국 대표 극한 직업'이라는 워킹맘이 지대로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