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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Sep 26. 2021

언어발달을 지켜보며 엿보는 인간 언어 탄생의 기원

육아기, 나의 또 다른 학습기

#18개월


우리 아기는 얼마 전 만 18개월을 지나 이제 19개월이 되었다. 18개월이 되면 의지도 너무 강해지고 활동력도 급증하여 1818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시기라고들 잔뜩 들었는데, 역시나 겁주던 얘기만큼 못할 건 없었다. 아 물론, 뭐만 하자하면 "시여"를 시전 하며 싫어병에 걸린 아이마냥 본인의 통제력을 과시하고, 멀쩡하게 잘하던 기저귀 갈기 등에도 갑자기 발작적인 발악을 하고 이런 것들은 다른 아이들 못지않게 있었다. 뭐 그런 과정까지 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고 애초에 받아들여 버리면 굳이 쌍욕 나올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발달


한때 생물학도 다음의 장래희망으로 언어학도 진로 진지하게 고민해봤던 사람으로서 우리 아들의 언어 발달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임신의 과정이 생물학적으로 생명의 진화 및 탄생의 신비를 엿보는 경이로운 일이었다면, 아기의 언어 발달은 언어 탄생의 기원을 엿보는 또 다른 설렘이다.


아직 우리 아들은 다양한 말을 하지 못한다. 어린이집 동기 중에는 1달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벌써 상당한 단어를 조합해서 말을 어느 정도 하는 친구도 있지만, 굳이 그 애가 한다고 해서 우리 애도 지금 그만큼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억지로 언어를 주입시킬 생각도 없고 노출된 환경에서 제 속도대로 스스로 배우길 바라며 내버려 두는 편이다.


#다양한 발


내버려 둔다고 방치가 아니라 나는 아이를 면밀히 관찰 중이다. 굳이 틀렸다며 지적하거나 교정하지 않고 알아서 배우게 내버려 두어서인지 상당히 창의적인 단어를 만들어 내고, 한국어 이상의 다양한 발성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아들에게 물은 'fua' 불은 'feu'이다. 벌써 세 달 이상째 계속 정확히 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우연이나 일시적인 산물이 아닌 것이다. 가르치지도 않은, 한국어에 있지도 f발음을 사용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신기한 것은 feu는 정확히 불어로 '불'이라는 단어가 맞으며, 그 발음은 뒤늦게 불어를 배운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아무리 연습해도 잘 안 되는 모음을 사용하는데 귀신같이 그 발음을 100% 정확하게 해낸다. 어쩌면 언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연유에서든 어떤 종족은 물을 fua라고 하다가 와전되거나 발전되어 aqua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고, 어떤 민족에게는 feu가 몇 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합


언어는 결국 사회적 합의이다. 우리 아들이 본인만의 단어를 이용하여 내게 의사 표현을 멋대로 해도 제깍 찰떡같이 알아듣고 정확한 반응을 해주는 상대와의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단어들은 이미 우리 세계 안의 언어로 형성된 것이다. 그런 단어들은 더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김'은 '미'가 되었는데, 최근 이 단어를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것에도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동음이어나 다의어가 이런 식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문법의 탄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큰 천기저귀 직물은 '모'로 지칭하는데, 내 생각에 자신이 애착을 가지는 것은 ㅁ이 포함된 단어로 표현하는 규칙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딸기', '바퀴'와 같은 단어도 비교적 정확히 발음하는데 아빠는 아직까지도 죽어도 암마라고 한다. '빠' 발음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할미' '할비'도 제대로 말하고, 아빠도 엄청 좋아하지만 아빠를 보고 항상 '암마'하고 달려간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친밀한 그룹은 똑같이 '~마'인 것이다.


#자연주의 육


언젠가 이 아이도 점점 크면서 자기가 속한 한국 사회의 규범을 체화하면서 현재 본인이 만들어낸 언어의 규칙들은 자연스레 잊히겠지만, 나는 이 아이가 스스로의 언어 발달 과정을 자연스럽게 거쳐서 본인의 필요에 의한 사회화 과정을 능동적으로 거치길 바라본다. 옆집 애는 벌써 제대로 말하는데 조급하지 않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몇 달 더 빠르고 느리다고 학교 갈 때쯤 말 못 할 아이가 어디 있는가? 과학적인 자료는 찾아보진 않았지만, 실제 주변 경험의 통계상 걷고 뛰고 대근육이 먼저 발달하는 아기들은 상대적으로 말은 더 늦게 하고, 대근육이 상대적으로 느렸던 아기들은 언어 발달이 좀 더 빠른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우리 아이는 전자인 것이고 나는 그래서 더 좋다. 만일 우리 아이가 후자였대도 나는 그래서 더 좋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더 사랑할 이유를 찾는 것이 정말 필요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PS. 그리고, 감사히도 저의 책 '육아, 겁내지 말자'는 누적 홍보비 0원에 yes24 임신/출산 베스트 셀러 딱지를 7주 연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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