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고, 이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푸릇했던 꿈도 개인적인 욕심이나 야망도 접어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단란한 가정도 좋고 금쪽같은 내 아이도 좋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반대로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좌절시키는 이유들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같은 상황을 무언가를 포기하는 이유로 써먹을 동안,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양립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쉽지 않았기에 그 사이 향상된 그들의 내공은 그만큼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1. 남자 쌍둥이 육아와 함께 모든 것을 시작한 사업가
내가 아는 한 분은 매 순간을 즐기면서 연간 매출 100억을 창출해 내는 멋진 중소기업 사장님이시다. 이 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일을 이리도 정말 즐겁고 열정적으로 하는데 성과도 좋으니 얼마나 행복하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분은 공예를 전공 후 시험관으로 아들 쌍둥이를 낳고 전업 육아를 하시다가 손이 커서 이왕 집에서 음식 한 번 할 때마다 필요량의 수 배를 만들어 (이를테면 돈가스 200장..)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런 음식들을 블로그에도 올리다 파워 블로거가 되고, 전공을 바꾸어 석사를 하면서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제과, 제빵에 바리스타까지 도합 7개의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셨다고 한다. 아들 혹은 딸 하나 전업으로 키우는 것도 대부분 죽겠다고 하는 마당에 그것도 아들 쌍둥이를 전적으로 혼자 키우면서, 요리도 하고, 글도 쓰고, 논문도 쓰고, 자격증까지 땄다고?? 맨 처음의 느낌은 '놀랍다'였는데, 다음에 드는 감정은 '다행이다'였다. 누군가는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실제로 보여주신 거니까. 묘한 안도감,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정도는 육아하며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잰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은 실제 사례가 생긴 것이다.
2. 애 달고 유학 온 커리어 우먼
뉴욕의 추운 도서관 입구에서 처음 만나 선배라고 인사를 했을 때 그 언니는 몹시 지치고 피폐한 모습이었다. 이후 딱 1년 만에 서울에서, 외국계 기업 30대 임원의 모습으로 멋진 차를 타고 동문회에 등장한 모습을 봤을 때엔 자칫 못 알아볼 뻔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당시 본인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유치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타국에 와 MBA에 진학하였다. 그 김에 아들은 어린 시절 영어권 경험을 쌓게 되고, 언니는 오히려 치열하게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유연한 스케줄로 인생에서 아이와 더 긴밀히 지내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풀타임으로 준비해도 받기 어려운 점수를 만들어, 풀타임으로 다녀도 따라가기 쉽지 않은 수업을 해 낼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무수하게 출중한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커리어에만 집중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달리 언니는 본인과 아이의 성장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고, 그를 발판으로 성공적인 점프를 하였다.
3. 출산 직후 입학한 컨설턴트
보통 MBA의 경우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일 정도로 일을 하다가 오기 때문에, 여자들은 유학 이후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극히 일부는 일단 와서 다니다 중간에 애를 낳거나, 아니면 낳자마자 핏덩이를 싸들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핏덩이를 싸들고 오는 경우는 아직 한국인은 보지 못하였지만, 우리 반 러시아 맥킨지에서 온 친구는 그야말로 출산하자마자 갓난 아기를 데리고 입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갓난쟁이에게 들어가는 공수가 이루 말할 수 없게 큰 것이어서 부모를 포함한 관련자들의 다른 인생의 시계들이 일시적으로 멈춰 버려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얘는 어떻게 이 큰 두 가지(첫 해외 유학 + 첫 육아) 일을 동시에 한 것일까. 일 년 넘게 그 아이가 여기저기 행사에 유모차를 끌고 나타나거나, 아니면 센트럴 파크 풀밭에서 1살짜리를 풀어놓고 기어 다니게 놔두는 것을 보니 육아 스트레스를 우리만큼 크게 여기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녀는 애 데리고 못 갈 곳 거의 없다 생각하는 듯했고, 데리고 나와도 노심초사하거나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긴, 나의 프랑스 친구는 태어난 지 고작 50일쯤 된 둘째를 둘러 매고 파리의 기후 대책 촉구 가두 행진에 나가는 것도 볼 수 있었으니.. 외국 친구들에게는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혹여 부서지거나 다치지 않을까 늘 걱정이 앞서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도, 커리어도 중요한 내가 오랜 세월 출산, 육아에 거부감을 가져왔던 이유는 그것들이 양립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너무도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고 얘기해도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일들인데, 계속 '못할 짓이다', '죽겠다'는 메시지들만 넘쳐나는 세상에서 희망의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성공적인 양립 스토리는 가뭄에 콩 나듯 '기사'에서나 어쩌다 한 번씩 볼 정도로 희귀했고, 그마저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읽어보면 거의 다 "사실 애는 양가 부모님 중 누군가가 전적으로 키워줘서 가능했다"류가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슈퍼우먼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하는 사람은 지금도 꿋꿋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확인한 것만으로도 발걸음에 힘이 한 떨기 더 보태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