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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Nov 25. 2020

아기를 낳아보고야 보이는 것들

겪기 전엔 결코 알기 힘들었던 소중함

다른 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나는 자식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고, 기본적으로 아기를 좋아하는, 살갑거나 여성미가 넘치는 스타일도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인지, 아기를 낳아 키워보면서 생각지 못했던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감동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 감정의 여운을 희미해지기 전에 남겨두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 겪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궁금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서 간단히 정리를 해 보았다.



1.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존재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아기 고양이나 강아지, 귀여운 캐릭터 등등 세상에는 귀여운 것이 참 많은데 딱히 인간의 아기라고 무조건 더 귀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귀여운 세계'에서 랭킹이 있다면 못생긴 아기보다는 귀여운 무생물의 캐릭터가 더 귀여울 수 있다고, 인정머리 없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살아왔다. (뼛속까지 이과 스타일.) 그런데 이상하다. 정말로 내 자식이 태어나니 그런 객관성이나 쿨함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울 애기는 아기 중에서도 특히 더 콧대가 낮고, 머리숱도 없고, 얼굴과 머리가 상당히 큰 얼큰이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런 팩트들은 종합 평가에 있어 완전 무용지물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어쨌든 내 아기는 '내가 태어난 이래 세상에서 본 그 어떤 생물, 무생물을 통틀어' 가장 귀여운 존재이다. 그 귀여움이란 상상해본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이며, 심지어 매일매일 그 경이가 갱신되고 강화되는 신기한 힘이 있다.


2. 그냥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양가 부모님은 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떻게 생겼든, 어떤 성격이든,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미 그저 한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한 것 없어도 그냥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되어있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들에게 받았던 그런 사랑들을 너무 쉽게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존재 하나만으로도 부모님들에게는 더 오래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 뭉클하기도 하다. "이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 내가 우리 손주 대학 가는 것까지는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런 소리를 종종 듣게 되는데, 내 아이가 커갈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부모님들이 연로해가실 그 세월이 너무 안타깝기도 한 양가적 감정이 드는 것이다. 평소에는 결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지도 않는 부모님들이 손주를 위해서는 꼭 백화점에 가서 몇 십만 원을 너무 기꺼운 마음으로 긁고, 그러고도 매번 뭐라도 더 못 사주어 안달이 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없었다면 이분들은 그 많은 사랑을 어디다 풀 수 있었을까 싶었다. 우리 아빠가 아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도, 아기를 그렇게 잘 보고, 아이와 함께 잘 노는 사람인 줄도 나는 40 평생 처음 알게 되었다.


3.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기를 키우면서 조건 없는 내리사랑뿐 아니라, 그 반대의 사랑 역시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랑을 하고 살면서도 동시에 은근히 많은 것들을 따져왔었다.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래서, 저래서 등등 여러 이유들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기는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나'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과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다. 내가 다른 엄마들보다 밥을 더 잘 챙겨줘서, 응가를 잘 씻겨줘서, 더 많이 안아줘서 혹은 예쁜 사람이어서 등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의 존재만으로 무조건적인 위안이 된다는 것이 놀라 지경이다. 내가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치거나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주양육자의 학대 등도 종종 일어나지 않는가?) 아이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로 그저 내가 곁에 있어주기만을 매 순간 갈망한다. 일명 껌딱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힘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아이가 그만큼 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해주는 것에 놀랍고도 고마마음이다. 내가 부족한 인간이고, 완벽과는 거리가 먼 엄마여도 아이는 늘 내가 세상 최고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대해준다. 내가 어디에서 또 이런 대접을 받아 보겠는가.



맨 처음 스쿠버 다이빙을 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나는 해산물도 자주 접하고, 티비에서 물속 세계도 많이 보았고, 심지어 거대한 아쿠아리움까지 가봤으니 바다 세계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직접 산소통을 매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알던 바다라고 생각했던 지식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그야말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과 같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시공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화려한 물고기 떼나 산호보다도, 내가 아는 세계의 소음과는 완전히 단절된 오롯한 고요와 다른 차원의 음파들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것 역시 내가 밖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짐에 놀라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의미 있는 것들은 어쩌면 사람마다 매우 다를 것이다. 아기가 생기면 모험하는 삶은 끝난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생각하기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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