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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Dec 31. 2020

아직도 보육원에는 새로운 아기들이 온다

우리 아기 또래 친구들을 생각해 보다

성로원. 이곳과의 인연은 19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 대학생 시절 YWCA에서 주최한 입양아 고국방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2주간 그들과 함께 한국을 탐방하고 또 문화에 대해서도 소개해주는 그런 자원봉사였다. 그 프로그램 중에 서울의 한 고아원도 같이 방문하는 잔인한 일정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성로원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 속에서 딱히 꺼낼 일이 없어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로부터 약 9년 후, 회사의 여러 동호회 중에서 고아원 방문 봉사를 선택하였는데, 가보니 어쩐지 낯이 익다 생각했더니 결연 시설이 바로 성로원이었다. 나는 또 한동안 종종 그곳을 들르다 유학 준비다 뭐다 하면서 점점 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또 약 9년이 지난 최근에야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곳이. 그곳은 여전할까. 우리 아기가 태어난 올해도 어떤 아기들은 태어나서 집이 아닌 그곳으로 가게 되었을까.



#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


그곳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색용 인증샷 찍기 좋은 삐까뻔쩍한 기부 물품보다, 몇 시간이라도 함께 있어주는 시간과, 따뜻한 체온으로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의 큰 품이다. 3~4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생면부지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다가와서 팔을 벌리며 그저 안아달라고 하기 바빴다. 대체 모르는 사람이 한번 안아주는 게 뭐라고 그 아이들은 그것을 그렇게 갈구하는 것일까.


그 꼬마들과 함께 놀다가 "이제 우리는 갈 시간이야~"하면, 이렇게 짧게 왔다가는 무리 떼가 너무도 익숙한 듯, 단 한 번 붙잡지도 않고 또 쿨하게 잘 가라고 손 흔드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의사 표현할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니 안아달라고라도 다가오지, 그보다 더 어려 누워만 있어야 하는 1살 아기들의 방에 들어가면 가슴이 더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 여전히 그곳에 오는 아기들 #


올 해는 우리 아기가 태어난 특별한 해이고, 그래서 내 아이의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또래 아기들 역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해보니 현재 그곳에 있는 올해 태어난 아기는 둘이 있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갔을 때마다 매번 한 살 아기 방에는 늘 5~6명씩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임에 일단 안도를 했다.


그러나 이내, 점점 연령별 인구수가 줄어들어가는 오랜 저출산의 당연한 결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바로 스친다. 어쨌거나 두 명인데, 한 명은 6개월 정도 되었고, 한 아기는 불과 20일 전에 태어난 아기라고 한다. 우리 아기는 생후 20일 즈음에 물심양면으로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보살핌을 한창 받고 있었는데.. 그 아기는 또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 아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어른들의 품이다. 아마 1살짜리 아기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기들은 올해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예전의 나와 같은 간헐적 방문자마저 없어서 더 큰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주 일부의 결핍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하여 그 아기들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성로원에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기저귀, 분유는 늘 쓰는 것이니 있으면 좋고, 물건은 거의 다 있지만 혹시 선물하고픈게 있으면 잘 쓰겠다고 하였다. 공개된 예산 내역을 찾아보니 11개월 미만 아기들에게 월 20만 원 아동 수당도 나오고, 성로원은 오래된 기관이라 각종 기부금에 정부 지원금 등 이월된 예산도 없지 않아 굳이 기저귀나 분유가 모자랄 리는 없어 보였다. 아무도 나의 고민을 알아주거나 고마워할 리는 없지만, 나는 하루를 꼬박 고민하여 선물을 골랐다.


#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강하고 건강한 아기가 되길 #


쪽쪽이의 영어는 pacifier, 즉 '위안을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아기도 뭔가 헛헛할 때마다 쪽쪽이를 잘 물고 있고,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위안이 되는 듯했다. 엄마 품으로 위안받지 못하는 아기들이 쪽쪽이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으면 했다. 그리고 자다가 빠졌을 때에도 쉽게 찾아서 다시 위안을 받기 바랄 수 있는 마음에 야광 쪽쪽이를 사이즈별로 두 개씩 골랐다.


사실 나는 야광 쪽쪽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쪽쪽이가 있는데 단지 야광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 추가로 더 사는 것은 사치라 생각하여 한번도 사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기에게는 사치품이지만 그 아기들에게는 필수품인냥 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갓 1달도 안된 아기에게는 스와들과 모자 손싸개 세트를, 6개월이 된 아기에겐 수면 조끼와 클립 달린 치발기를 골랐다. 신생아는 자다가 놀라서 자지러지는 경우도 많은데 옆에서 언제든 깨서 달래줄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가 없는 아기는 최대한 깨지 않았으면 했고, 6개월 된 아기는 자면서도 뒤집거나 구르다 보면 이불도 못 덮을 텐데 그래도 따스하고 포근하게 잠을 잤으면 했다.



쿠팡은 이미 배송을 완료했다고 문자를 받았고, 나는 그 물품들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아니고 그냥 직업으로서 출근하는 직원들인 선생님들에게는 어쩌면 딱히 고맙기보다는 성가신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라는 것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전달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 아이들도 어떠한 형태로든, 한갓 이런 말도 안 되게 미약한 조각들에 불과할 지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온다면 좋겠다.


성로원의 지번 주소명은 '성로원 아기집'이다. 이제는 아기가 더 이상 얼마 없고 더 큰 아이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데, 언젠가는 더 이상 새로 오는 아기가 없어진 '아이집'으로 바뀔 수 있기를. 우리 아이가 주 무대로 살아갈 세상에는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훈훈해져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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