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또래 친구들을 생각해 보다
성로원. 이곳과의 인연은 19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 대학생 시절 YWCA에서 주최한 입양아 고국방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2주간 그들과 함께 한국을 탐방하고 또 문화에 대해서도 소개해주는 그런 자원봉사였다. 그 프로그램 중에 서울의 한 고아원도 같이 방문하는 잔인한 일정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성로원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 속에서 딱히 꺼낼 일이 없어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로부터 약 9년 후, 회사의 여러 동호회 중에서 고아원 방문 봉사를 선택하였는데, 가보니 어쩐지 낯이 익다 생각했더니 결연 시설이 바로 성로원이었다. 나는 또 한동안 종종 그곳을 들르다 유학 준비다 뭐다 하면서 점점 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또 약 9년이 지난 최근에야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곳이. 그곳은 여전할까. 우리 아기가 태어난 올해도 어떤 아기들은 태어나서 집이 아닌 그곳으로 가게 되었을까.
#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
그곳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색용 인증샷 찍기 좋은 삐까뻔쩍한 기부 물품보다, 몇 시간이라도 함께 있어주는 시간과, 따뜻한 체온으로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의 큰 품이다. 3~4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생면부지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다가와서 팔을 벌리며 그저 안아달라고 하기 바빴다. 대체 모르는 사람이 한번 안아주는 게 뭐라고 그 아이들은 그것을 그렇게 갈구하는 것일까.
그 꼬마들과 함께 놀다가 "이제 우리는 갈 시간이야~"하면, 이렇게 짧게 왔다가는 무리 떼가 너무도 익숙한 듯, 단 한 번 붙잡지도 않고 또 쿨하게 잘 가라고 손 흔드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의사 표현할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니 안아달라고라도 다가오지, 그보다 더 어려 누워만 있어야 하는 1살 아기들의 방에 들어가면 가슴이 더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 여전히 그곳에 오는 아기들 #
올 해는 우리 아기가 태어난 특별한 해이고, 그래서 내 아이의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또래 아기들 역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해보니 현재 그곳에 있는 올해 태어난 아기는 둘이 있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갔을 때마다 매번 한 살 아기 방에는 늘 5~6명씩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임에 일단 안도를 했다.
그러나 이내, 점점 연령별 인구수가 줄어들어가는 오랜 저출산의 당연한 결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바로 스친다. 어쨌거나 두 명인데, 한 명은 6개월 정도 되었고, 한 아기는 불과 20일 전에 태어난 아기라고 한다. 우리 아기는 생후 20일 즈음에 물심양면으로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보살핌을 한창 받고 있었는데.. 그 아기는 또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 아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어른들의 품이다. 아마 1살짜리 아기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기들은 올해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예전의 나와 같은 간헐적 방문자마저 없어서 더 큰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주 일부의 결핍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하여 그 아기들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성로원에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기저귀, 분유는 늘 쓰는 것이니 있으면 좋고, 물건은 거의 다 있지만 혹시 선물하고픈게 있으면 잘 쓰겠다고 하였다. 공개된 예산 내역을 찾아보니 11개월 미만 아기들에게 월 20만 원 아동 수당도 나오고, 성로원은 오래된 기관이라 각종 기부금에 정부 지원금 등 이월된 예산도 없지 않아 굳이 기저귀나 분유가 모자랄 리는 없어 보였다. 아무도 나의 고민을 알아주거나 고마워할 리는 없지만, 나는 하루를 꼬박 고민하여 선물을 골랐다.
#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강하고 건강한 아기가 되길 #
쪽쪽이의 영어는 pacifier, 즉 '위안을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아기도 뭔가 헛헛할 때마다 쪽쪽이를 잘 물고 있고,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위안이 되는 듯했다. 엄마 품으로 위안받지 못하는 아기들이 쪽쪽이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으면 했다. 그리고 자다가 빠졌을 때에도 쉽게 찾아서 다시 위안을 받기 바랄 수 있는 마음에 야광 쪽쪽이를 사이즈별로 두 개씩 골랐다.
사실 나는 야광 쪽쪽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쪽쪽이가 있는데 단지 야광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 추가로 더 사는 것은 사치라 생각하여 한번도 사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기에게는 사치품이지만 그 아기들에게는 필수품인냥 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갓 1달도 안된 아기에게는 스와들과 모자 손싸개 세트를, 6개월이 된 아기에겐 수면 조끼와 클립 달린 치발기를 골랐다. 신생아는 자다가 놀라서 자지러지는 경우도 많은데 옆에서 언제든 깨서 달래줄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가 없는 아기는 최대한 깨지 않았으면 했고, 6개월 된 아기는 자면서도 뒤집거나 구르다 보면 이불도 못 덮을 텐데 그래도 따스하고 포근하게 잠을 잤으면 했다.
쿠팡은 이미 배송을 완료했다고 문자를 받았고, 나는 그 물품들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아니고 그냥 직업으로서 출근하는 직원들인 선생님들에게는 어쩌면 딱히 고맙기보다는 성가신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라는 것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전달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 아이들도 어떠한 형태로든, 한갓 이런 말도 안 되게 미약한 조각들에 불과할 지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온다면 좋겠다.
성로원의 지번 주소명은 '성로원 아기집'이다. 이제는 아기가 더 이상 얼마 없고 더 큰 아이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데, 언젠가는 더 이상 새로 오는 아기가 없어진 '아이집'으로 바뀔 수 있기를. 우리 아이가 주 무대로 살아갈 세상에는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훈훈해져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