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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May 03. 2019

리더의 격에 대해 고찰하다

'초격차'에서 읽힌 리더의 그릇

한 때 리더십을 포함한 자기 계발서를 신간마다 나오기 무섭게 섭렵하던 시기가 있었다. 항상 결론은 다 좋고 좋은 말인 듯하고, 결국 한 줄이라도 와 닿게 느낀 바가 있으면 이제는 실천의 문제이지 무지의 문제는 아니라는 뻔한 깨달음을 얻은 뒤, 더 이상 그 코너에서 어슬렁거리지 않게 되었었다. 특히나 대부분의 성공 CEO 인터뷰나 특집기사를 보면 나름의 이유로 대단않은 사람이 없는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 그 기업이 망하거나 스캔들이 터진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그대인데도 불구하고, 정 반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 갑자기 예견되었던 패배자로 둔갑해버리는 아이러니가 참 어이없었다. 한 때 소니 노키아가 그랬고 그 외 수많은 사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권오현 장의 '초격차'라는 책이 나온 것을 출간 즉시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책 꽤나 읽는다는 배울 점 참 많은 동생이 굳이 내게 골라서 선물한 데에는 이유가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직업적 세상에 대한 희망을 준 책이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자가 성공하는 세상


참으로 슬프게도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선과 성공은 비례하지 않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목격한다. 오히려 "너무 정직하거착하면 성공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성취에는 독이 되기까지 한다는 믿음이 공공연히 퍼져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존경보다는 원성을 듣는 일이 훨씬 많았고, 사회생활하는 내내 들었던 의문은 "정말 못되고 남을 짓밟는 사람이어야 결국 성공하는 것인가"였다. 매번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내게도 어느 순간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성공한 못된 사람이 되기보단, 덜 성공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할 수 있는 꼬장꼬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해왔다.


그러나 세계를 놀라게 한 스케일의 성장을 했던 삼성전자의 전설적인 권오현 장은, 책의 내용이 전부 진심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아랫것들에게 욕만 먹었을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결단력 있는 인사 등을 추진하면서 분명히 어쩔 수 없이 어느 부분에서는 원망도 들었겠지만 진심으로 존경한 후배들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직원들이 매우 좋아한 사장이었다는 경험담 글도 봤다.) 내가 그렇게 본 이유는 1) 후배들을 믿고 맡기면서 본인의 후임이 될 재목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컸고, 2) 업무나 충성도를 근무 시간으로 비례하여 평가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을 신경 쓰는 꼰대가 아니었으며, 3) 부하들에게 스스로 말을 많이 하기보단 선문답 같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치도록 유도했으며, 허접한 전문가들을 깔 때도, 자격 미달의 리더를 교체할 때도 마찬가지의 우아한 방법으로 잡음 없이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무림 고수의 전략을 썼다.


초격차는 리더의 사고 스케일에 있었다


책에서도 초격차라는 챕터가 있었고, 실제로 '개선'과는 차별화되는 '혁신'의 개념에서 이 단어를 쓰긴 했다. 그가 말한 혁신의 방식은 작은 것부터 소소히 변화시키는(Bottom-up) 정도가 아니라, 아예 Top-down으로 도무지 쉽게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점을 콱 찍고 어떻게든 도달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얼마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의 스타일이었을지 상상이 갔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초단기간에 전쟁황폐국에서 경제대국으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일으켜온 전형적인 방식이 아닌가. 그가 업무 세계에서 초격차에 도달하는 성과를 이룬 것만으로도 물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세기의 인재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가 더 대단했던 것은 그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인격까지도 초격차급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수하게 많은 리더들이 리더십이라는 명목 하에 직원들을 격려하고 함께 성장하려 하기보다는 쥐어짜고, 상처 주고, 가로채면서 본인만 앞에서 승승장구하고 뒤에서는 증오를 받아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봐왔다. 권오현 장의 인재 철학이 그 무엇보다 태도(attitude)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직원들이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본 철학에서 정말 공감했으며, 그 견지를 유지하면서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 참으로 고무적이었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정점일 때에 스스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사퇴를 자진했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리더십에 대한 기본 철학이, 뛰어난 한 사람이 나가고 나서 그 조직이 쇠락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미래를 망친 리더의 탓이고, 좋은 리더는 오히려 그가 떠나고 난 뒤에 오래 더 잘 될 수 있도록 현직에서 끊임없이 후계자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라 믿었고, 33년 직장 생활의 반은 본인 스스로가 균형 잡힌 리더가 되는 데에,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런 리더들을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장님은 미니멀리스트


어디에도 '미니멀'이라는 단어나 그런 챕터는 없었지만, 그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꿰뚫는 한 단어를 나는 그것으로 보았다. 업무에 있어 그가 추구했던 원칙은 종합해보면 1) 결정을 적게 한다. (위임을 더 많이 한다.) 2) 말을 적게 한다. (질문을 더 많이 한다.) 3) 일과 회의에 들이는 절대 시간을 적게 한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이 세 가지가 중요한 축이었던 것 같고, 특히나 다 기억도 못할 정도여서 메모지에 빼곡히 채워야만 할 정도로 지시할 거리가 많다면 스스로도 그것을 잘 지키 리더로서 모범을 보일 수가 없을 것을 경계했다. 그렇게 큰 조직의 리더의 모습으로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최대한 심플하고 담백한 삶을 견지하면서도 그리 오래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존경받는 리더들을 먼발치에서 간접적으로 겪은 일도 분명 있었지만 속내까지 이렇게 들여다본 것은 처음 이어서일까.


또한 그는 중요한 항목에서 항상 단 몇 단어로 심플하게 정리되는 명확한 철학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테면, 리더의 종류는 4가지로 분류해서 "Proactive Leader => Refresh (휴식), Reactive Leader => Repair (재교육), Passive  Leader => Replace (임무 교체), Defensive Leader => Remove (제거)"와 같은 명확한 대응법이, 평가와 보상에는 "Pay by Performance, Promotion by Potential"과 같은 명확한 의사결정 기준이 있었다. 요즘 나는 개인적인 삶에서 가장 큰 화두가 사물의 미니멀리즘을 넘어서 관계에 대한 것이었는데, '선함/악함'이라는 기본 축을 중심으로 '센서티브/둔감'이라는 보조축의 프레임으로 사람을 정리하기로 결정했었다. 짧은 인생을 좀 덜 소모적이고 더 효율적으로 정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나름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모로 느낄 때마다, 희한하게 어떤 것이든(물리적인 것이든 개념적인 것이든) 결국 미니멀주의로 회귀하게 되는 결론이었던 터라 더욱 와 닿는 철학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한 부분도, 명료해진 부분도 많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프롤로그에 이미 있었다. 어떤 애벌레도 때가 되면 허물도 벗고 나비로 탈태해야 할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벌레에 머물고자 한다면 살찌고 뚱뚱한 애벌레가 되어 나비는커녕 가장 먼저 잡아먹히기 딱 좋다는 이야기. 현재 나는 참으로 안락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데, 사실은 돼지 애벌레가 되고 있다는 뜻은 아닌지 정신이 확 들었다. 때론 너무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우리의 젊은 날이 불필요한 강박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만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는지 헷갈린다. 나는 어떤 그릇일까. 나는 더 할 수 있고 더 해야 하는 사람인데 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격차급 리더, 그 분은 스스로 본인의 그릇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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