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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Mar 01. 2021

아버지들에게 배웠고, 또 아이에게 전하고픈 것

멋진 어른들 이야기

아이가 커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보육보다 교육의 중요도가 더 크게 올라가는 날이 올 것이다. 태어난 이래 매일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엄마의 철학이나 스타일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당연히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아빠들의 임팩트 역시 결코 작지 않다. 감사히도 내가 여전히 배울 수 있는 아버지가 둘이나 건강히 살아 계시고, 또 새로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남편 역시 내가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내 아이에게는 이들에게 배운 것들을 꼭 하나씩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1. 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전형적인 갱상도 싸나이로, 말이 많거나 다정다감하거나 한 것들은 남자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배우고 자라왔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말을 하지 않는 데도, 아니 때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더 잘 전달될 때가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여느 범생이 아이들처럼 시험 기간이면 늘 독서실을 다니고 늦은 시간 귀가를 하곤 했다. 물론 나도 다른 보통 아이들처럼 아마도 반은 책상에서 졸고, 나머지 반의 반은 친구들과 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독서실 근처를 쏘다니며 배회하고, 나머지 남는 시간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벼락치기를 하는 데에 보냈던 것 같다. 그날도 친구와 독서실에서 빠져나와 그 시절의 나름 진지했던 고민들과 스트레스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가 어느 순간 보니 시간은 너무 늦었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들어가는 길이었다.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유례없이 늦어지자 걱정된 아빠가 나를 찾으러 왔는데, 아까 친구와 황급히 독서실로 복귀할 때에 뒤에서 따라오던 어른이 아빠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빠는 공부한 게 아니라 늦게까지 노느라 안 들어온 딸에게 끝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본 게 없는 체, 다만 늦어 걱정되어 왔으니 같이 들어가자는 말, 딱 그뿐이었다. 나는 그 뒤로 너무 죄송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덜 땡땡이를 칠 수밖에 없었다.


2. 우리 시아버지


우리 시아버지는 팁 주는 한국 할아버지다. 그것도 외국도 아닌 한국에서. 그리 룸도 없는 일반 식당이라도 누군가 전담 서빙해주시는 분이 계시면 그분들에게, 촬영이나 운전 등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이미 요금을 다 지불한 상태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꼭 팁을 쥐어주신다. 기본은 배춧잎(만원)이요, 김치잎(오만 원)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어떨 때에는 배보다 배꼽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버님이 그렇게 자산가이거나, 흥청망청 쓰시는 분도 전혀 아니기에 왜 그렇게까지 할까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너무도 잘 알기에 그 마음을 본받고 싶다. 결국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노고에 비해 덜 대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인건비가 너무 낮은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그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다 복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이득을 보고자 먼저 팁을 주고 시작하는 일은 없다. 서비스를 다 받고 나올 때 정말 수고했다며 다시 볼 일 없는 그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다. 어쩌다 허드렛일을 위해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인부들을 기용할 때에도 절대로 하대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일부러 굳이 더 넉넉히 고용하기도 한다. "그들도 다 먹고살아야제."


3. 우리 남편


이제 갓 1년 차 아버지가 된 나의 남편도 내가 참 본받을 것이 많은 사람이다. 드디어 수능도 끝났는데 원하던 점수보다 한참 낮은 수능 점수를 받았다면, 좌절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그동안 억눌렸던 입시 스트레스를 놀면서 실컷 풀고라도 싶었을 텐데, 대학 입학 전까지 남은 고등학생의 마지막 방학을 당시 아버님이 시킨 대로 묵묵히 구두닦이를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님이 근무하시던 도청 앞 작은 구두방에서 아버님을 포함한 동료들이 계속 오가는데도, 아버님은 그 구두수선공에게 제 자식이라고 설렁설렁 봐주시지 말라고 미리 일러두시고는 오가며 구두를 닦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아는 체도 안 했다고 한다. 바로 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될 아들에게 굳이 본인 회사 앞에서 구두를 닦는 일을 시키신 것도 대단하지만, 억하심정을 가지거나 꾀 한번 안 부리끝까지 성실히 잘 해낸 남편이 더 대단해 보였다. (이 이야기도 훗날 아버님의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대학원 때 본인은 정말 허름한 차림으로 다니면서, 정작 삐까뻔쩍하게 명품 두르고 다니던 사람들이 밥 한 번을 안 쏠 때, 만나는 사람마다 웬만하면 따지지 않고 자기가 먼저 밥값을 계산하던 모습에서 자신에겐 인색(엄격)하더라도 남에겐 관대한 모습을 읽었다. 남자들의 자존심이라는 시계마저도 너무도 낡고 심지어 브랜드도 없는 것을 차고 있어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오래전에 아버지가 처음 사 주셨던 소중한 시계라서 차고 다닌다고 하였다. 그때 확신했다. "아, 이 사람은 진짜다."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는 사람, 살아보니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나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나 역시도 우리 아빠처럼 조급해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내 자식을 언제나 믿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아기에게 처음 이름이 생겼을 때, 그를 기념하기 위해 도장을 파면서 옆에 고심해서 새긴 문구 역시 "엄마 아빠는 늘 네 편이야."였다. 또, 우리 시아버지처럼 늘 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감사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지며 살아가고, 우리 남편처럼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에게 이 모든 것들을 꼭 잘 전달하고 싶다. 이것만 잘 되어도 아주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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