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상상했던 육아 휴직 기간 가장 큰 사치 중 하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가한 시간을 골라' 커피숍에 가서 가끔은 그래도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나름대로 순한 우리 아기의 컨디션이 좋을 때 정말 가끔은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가능한 상상을 해본다. 코앞에 스타벅스가 있음에도 테이크 아웃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워낙 가까운 거리니 가볍게 아기 띠를 하고 집을 나서면 막상 아기 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가 힘들어 차라리 안 먹고 말게 되었다. 유모차를 대동하고 한 번 동네 산책 나갔다가 들러야지 하고 보면 막상 컵 홀더를 챙기지 않아 유모차 밀면서 한 손으로 컵 들며, 종종 마스크까지 벗었다가 다시 한 모금씩 마실 엄두가 안 나서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어제는 드디어 유모차+컵홀더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작정을 하고 스타벅스에 들르게 되었다. 매 연말마다 그때만 먹을 수 있는 토피넛 라떼를 올해도 역시 한 잔은 마셔야겠고, 무엇보다 생일 쿠폰 기간이 한 달인데 이렇게 작정하지 않으면 또 못 쓰고 날리게 될 것만 같았다. (5월에 선물 받은 쿠폰도 아직 못 썼다는 슬픈 전설이..)
1. 아기와 카페 방문하기 가장 좋은 거리두기 2단계
올해 아기 데리고 카페 방문이 꺼려졌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였다. 식음료의 특성상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카페 방문자들의 많은 숫자가 먹고 마시며 대화 중인데 대화를 하면 침방울이 어디서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심지어 거리가 있어도 공조 시스템 등을 타고 6미터나 멀리 있던 사람이 전파 감염된다는 둥 종잡을 수가 없으니, 떠드는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보다도 무조건 장소 자체를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거리두기 2단계가 되어 카페에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이 없으니, 아기를 데리고 가기에 가장 안전한 환경이 되었다. (카페 직원, 파트너 등은 마스크를 계속 끼고 있으니.) 이 김에 집안이 답답한 9개월 아기에게 카페를 마음껏 구경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현장 취식이 금지되어 있어 구경 역시 '주문 ~ 테이크 아웃'하는 그 짧은 동안만 가능하니 초고속으로 관람을 끝내야만 한다. 따라서 미리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한다거나 등의 현장의 시간을 절약하는 짓은 절대 할 수 없다.
2. 연말 분위기 만끽은 역시 카페에서
대부분 바쁘게 커피 마시고 다녀가기 바빴던 카페를 처음으로 '구경시키기'의 목적으로 가보니, 예전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역시나 스타벅스는 다이어리를 필두로 이러저러한 것들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우리 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말인데, 코로나 상황으로 그마저도 만끽시킬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니었다면 이미 아기와 함께 각종 트리 도장 깨기를 하고 다녔을 텐데.. 동네 스타벅스에 가보니 올해는 신기하게 트리 모양의 머그도 있고, 온통 새 빨간색의 드립 포트, 도자기 주전자, 마그네틱, 텀블러 등 시즈널 상품이 가득한데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모양새였다. 그나마 어제는 구매력은 당장 없지만 아주 먼 미래의 잠재 고객인 우리 아기가 많이 봐주었다. 울 아기의 머릿속에서 연말은 어떤 색깔과 소리, 냄새로 남을지 궁금하다.
3. 잠시의 평화는 테이크 아웃을 하는 순간 the END
텅텅 빈 카페에서 연말을 만끽하는 평화로운 순간은, 테이크 아웃을 하여 문을 열고 나서는 그 순간부터 와장창 깨지는 데에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유모차에 컵 홀더까지 완벽 장착해서 나왔건만 유모차는 생각보다 소소한 것들에 덜컹거렸고, 모처럼 휘핑크림을 가득 넣어 나의 연말 사치를 기다리고 있던 토피넛 라떼는 뚜껑의 그 작은 구멍에서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이미 유모차 손잡이, 내 패딩 코트, 컵 홀더 등에 이미 칠갑을 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시 들어가 물티슈와 티슈를 잔뜩 주문(?) 하고, 무엇보다도 뚜껑 마개를 제일 먼저 외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플라스틱을 뜨거운 온도에 담가 먹게 되는 것도 싫고, 불필요한 환경 오염도 싫어서 한 번도 달라고 한 적 없는 그 길쭉하고 초록색 뚜껑 구멍 마개(?) 혹은 휘젓개(?)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잘 틀어막고, 온갖 곳을 다 닦고 다시 도도하게 나오는데, 그래도 소용없었다. 잘 보면 뚜껑 한가운데 바늘구멍 같은 하나의 구멍이 더 있는데, 꼴랑 그 구멍에서조차도 나의 휘핑크림은 틀어막힌 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했다. 교훈은, 1) 휘핑크림 가득한 2) 뜨거운 음료는 유모차와 있을 때엔 앞으로 절대 금지다.
아기와 함께라도 연말 기분의 아주 작은 사치를 부려보려던 나의 계획은, 사실은 아주아주 큰 사치였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단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여기저기 닦아대느라, 덜컹거리는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며 다른 손으로는 최대한 커피가 흔들리지 않게 곡예를 하며 걸어가는 데에 이미 나는 지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사람들이 최대한 덜 지나가는 야외의 안전한 자리를 겨우 잡고, 드디어 뚜껑을 열고 마스크를 벗으려는 순간 보니, 아기는 세상 구경은커녕 이미 잠이 들어 있었고, 기대했던 핫 커피는 반 이상 식어 더 이상 핫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케터로서 올해 스타벅스의 굿즈를 대충이라도 한 번 훑었고, 종이컵에조차 크리스마스를 입히는 노력을 한 것 역시 놓치지 않고 올해를 보낼 수 있었으니 할 일은 했다. 아, 그리고 식었거나 크림이 다 날아갔거나 상관없이 올 연말도 토피넛 라떼 도장 깨기는 완수한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