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물고기 Mar 09. 2021

우리 아이의 첫돌 이야기

돌잔치 아닌 그냥 이벤트 정도로

지난 2월 20일은 우리 아이의 첫돌이었다. (돌이 지났으니 이제 더 이상은 '아기'라는 표현보다는 '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코로나 확진자 수 추이에 따른 시나리오를 두 개를 마련해 뒀었는데 역시나 시국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었다. 첫 번째 안은, 아기를 너무 보고 싶어 했지만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자주 보지 못했던 형제 가족들을 초대해서 일주일 전인 설 연휴에 겸사해서 지방에 모인 김에 그곳 한옥 한정식집에서 소규모 돌잔치를 여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안은,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한옥 스튜디오에서 다 같이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이나 찍고 간단한 식사 정도만 하고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시국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두 번째 안으로 가게 되었다. 첫 번째 안으로 가든 두 번째 안으로 가든, 공통적으로 내가 내 아이의 첫돌에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 명확히 세 가지가 있었다.



1. 아름다운 전통문화


돌잔치를 하게 되어도 한옥 한정식집에서, 스튜디오 촬영만 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진짜 한옥을 이용하는 한옥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돌 기념을 하려고 했다. 일단 첫 번째 생일인 '첫돌'의 의미 자체가 우리나라 전통적인 색채가 매우 강한 행사이고, 그 취지에 맞게 전통적인 장소에서 전통 복장을 한 행사로 진행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입을 수 있는 돌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인생에서 딱 한 번만 할 수 있는 돌잡이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재미와 기쁨을 아이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안겨드리고, 아이가 혹시 기억을 못 하더라도 나중에 두고두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전수해 줄 수 있도록 사진도 제대로 찍어두고 싶었다.


2. 가족들의 사랑


돌잔치를 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수의, 광의(廣意)의 가족 구성원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그 누구보다도 우리 아이를 가장 크게 사랑해 주시는 양가 조부모님들이 돌 행사에 함께 하셨고, 두고 남을 기념사진도 모두 함께 고운 한복을 입고 이쁘게 남겼다. 그리고 자리는 함께 못했지만 돌 반지 하나씩 보내준 형제들의 마음도 돌 상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기념 촬영을 해 두었다. 아이가 조금 커서 가족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이건 누구 누가 보내준 선물이라는 것도 꼭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함께했던 가족, 친지들의 아주 따스한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네가 첫 생일을 맞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가까이 있지는 않아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매년 되뇌어 주고 싶다.


3.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 조각


한옥 스튜디오에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는 양가 부모님과 아이 체력을 생각하여 기본 촬영만 진행했기에 너무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다양한 컨셉으로 촬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장면을 추억으로 남겼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엄마 아빠 양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인데, 사실 돌 전날 촬영 당시 우리 아이는 이미 혼자서도 잘 걸었지만 그래도 부모의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해 걸음마를 떼는 모습은 정말 인생에 더없이 아름다운 순간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오랜 고서적을 짚어가며 책을 읽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그 위에 쌀 튀밥을 올려두고 세상 진지하게 주워 먹으려는 모습을 촬영한 컷인데, 보정 본에서는 물론 튀밥이 제거되겠지만 나는 튀밥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원본 모습 그대로가 훨씬 더 좋다. 매일매일의 이 모든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겠지만, 태어난 이래 가장 의미가 큰, 첫 번째 생일인 첫돌 즈음의 모습은 이러했다고 그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제대로 남길 수 있었던 돌 이벤트였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정작 우리 아이에게는 가장 고생스러운 날들이기도 했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아무래도 어르신들을 모시고 움직이는 일정에서 그들이 중심이 되다 보니 정작 아이가 계속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돌 전날에는 이렇듯 촬영을 하고 강북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느라 저녁은 거기에 전채로 나온 깨죽이나 깨작거리다가 금요일 저녁 막히는 차 속에서 고생을 해야 했고, 돌 당일에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느라 피곤한 상태에서, 모처럼 올라오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쿠아리움을 돌아다니다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통에 아이는 또 끼니를 제대로 못 먹었다. (아쿠아리움의 명목적 핑계는 아이였지만, 사실 그 전주에도 갔었기 때문에 시부모님을 구경시켜 드리려는 목적이 더 컸었다.) 우리 아이는 밖에 나오면 특히나 더 잘 안 먹는 것이,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여기저기 궁금한 것도 많아 배고픔을 잊는 것 같았고, 돌맞이 기념으로 더 이상 이유식이 아닌 밥과 (미역)국을 처음 접하니 더 안 먹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외출하면 심지어 2박 3일이라도 일부러 참는 것인지 외부에서 한 번도 응가를 싼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지 아쿠아리움에서 나오는 길에 싸게 되어 밖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찝찝함도 처음으로 경험해야 했다. 돌 접종도 최대한 빨리 맞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시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에 완료하여 아이 입장에서는 힘들었던 일이 많은 날이었다.


돌날 이른 아침에 깨자마자 기척도 안 하고 어른 침대에서 혼자 능숙히 내려와 방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 나와 모두를 놀라게 해 정말 다 컸다 싶었다. 이제 조금은 큰 만큼, 생일이라는 본인의 날에도 다른 날처럼 예방접종과 같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도 여전히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있고, 세상은 늘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때론 희생도 하게 되는 것을 배운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도 두 돌에는 정말 오롯이 네가 기쁘기만 한 날을 만들어 줄게!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들에게 배웠고, 또 아이에게 전하고픈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