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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Mar 14. 2021

층간 소음, 발생도 하기 전에 사죄하다

순탄한 육아 생활의 준비


며칠 전 아이를 대동하여 아랫집을 방문하였다. 현재 아직 아이는 고작 10kg에 마구 뛰어다니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뒤뚱거리면서 쿵쿵댈 수도 있고,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기 전에 미리 먼저 이실직고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랫집은 몇 년 전 이사 오자마자 물 새는 것 때문에 올라와 얼굴 딱 한 번 본 게 다인 사이고 이후 교류도 없는 터라, 예고도 없이 갑자기 시끄러워지면 많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많은 것이 그렇듯이, 어차피 할 것이면 이왕 행동하는 시점을 조금만 앞당겨서 하기만 해도 결과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건의가 들어오기 전에, 아이가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앞으로의 순탄한 육아 생활을 위해 선제적으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 한 층을 내려가기 위해 준비했던 것은 구구절절한 손편지와,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하기 위해 기념품으로 제작했던 수건 한 쌍, 그리고 딸기 한 박스였다. 선물은 고심해봤는데, 케이크 등도 많이 한다고들 하지만 기호를 최대한 덜 타는 제철 과일이 아무래도 나은 것 같았다. 케이크는 실제로 몇 번 선물 받아보니 반도 다 먹기 전에 썩어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손 편지를 세 번이나 다시 쓰면서 꽤나 공들였던 이유는, 코로나로 비대면이 되거나 마스크를 쓴 상황에서 제대로 직접 얘기를 못할 것 같은데, 진심이 전달되면서도 최대한 정중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손 편지로 완성을 하고 끝낸 일이지만, 굳이 다시 타이핑을 하면서 이곳에 공유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참고할만한 템플릿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나도 참고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굳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거나 몇 번이고 다시 쓰는 수고를 덜 수도 있었을 테니까. 우리는 모두 바쁜 육아맘이 아니던가. 필요한 분 얼마든지 참고하시길.


"안녕하세요 윗집 XXX호입니다.

작년에 저희 아기가 태어나고, 이제는 좀 커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있네요.. 이제 갓 10kg 남짓한 아기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걸음이 불완전하여 뒤뚱거리다 넘어지는 일도 종종 발생하여 층간 소음이 많이 유발되지나 않을지 늘 조마조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매트도 추가 주문하고 신경을 나름대로는 쓴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시끄러울지 잘 알기는 힘들고, 또 저희 아들이 점점 커가며 더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추후라도 혹시 많이 불편하시면 문자로라도 간단히 연락 주시면 더욱 조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 010-XXXX-XXXX)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XXX호 드림"


코로나로 괜히 벨 누르면 더 싫어할 것 같아 몰래 문 앞에 걸어두고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서 용기 내어 벨을 눌렀다. 혹시라도 걸어둔 봉지가 터져 딸기가 망쳐질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실제로 잠시라도 얼굴을 보고 직접 건네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주머니께서 계셨고, 아기를 반가워하시면서 "안 그래도 아이 없는 집이라고 들었었는데, 어느 순간 아 소리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아기 이쁘게 키우세요."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역시 직접 얘기하길 잘했다. 벌써부터 아기 소리가 전달될 정도로 층간 소음이 유발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말의 내용이나 상황 등을 조금씩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정도로 커가는 내 아이에게 직접 상황을 보여준 것도 좋았다.



우리 윗집 같은 경우는 이사 온 첫날부터 밤늦게까지 도무지 쉬지도 않고 뛰어 건의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날 미안하다고 인사 오긴 했지만 그 뒤로도 도통 아이는 한 번 뛰면 멈추게 하는 법이 없었다. 알고 보니 본인들은 매트 시공까지 했다며, 그러면 아예 층간 소음이 유발되지 않는 줄 아는 건지, 아예 제지 없이 그냥 신나게 뛰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매트를 아무리 깐다 한들 소음이 100% 안 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도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더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고민이 많아지긴 하겠지만, 음식으로는 촉감놀이 등 장난치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 왔던 것처럼, 집 안은 뛰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교육할 생각이다. 이번에도 아이를 아랫집에 일부러 같이 데려가서 상황을 보여준 것 역시 그 교육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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