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말하고(Speaking) 글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왔다(Writing).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시간에서 잠시동안 다른 종들과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과 글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언어를 통한 인지혁명으로 가능했다. 인지혁명이란 사람에게 비로소 개념적 사고가 가능해진 것으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적 실체(Fictional Entity)에 대한 믿음이 역사 속에서 말과 글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사람은 아직 만나지 않은 것을 약속하고 신뢰할 수 있다. 사람은 인지능력을 발달 시킴으로써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현대의 국가, 자본, 종교, 과학, 문학, 예술 등 문명의 여러 조각들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오랫동안 사람에게 있어 예술이란 창조적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쓸모 없지만 놀이로서 사람은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말하고 써왔다. 사람은 노래해왔고 이를 구전(Oral Language)으로 전해왔다. 이것이 노래의 원형인 동시에 이야기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고대에 문자 언어는 특권 계층의 소유물로서 활용되었지만 15세기에 들어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토박이 글자 언어(Written Language)가 일반 국민에게 학습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 등 근대 국민 문학들이 탄생했고 소설을 비롯 현대 문학의 형태들이 갖춰지게 되었다. 사람에게 놀이는 이야기와 아주 밀접해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라는 검정 상자를 통해 우리는 어떤 말과 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서사적 존재인 우리 사람에게 미래의 예술 작품으로서 어떤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이번 파트에서는 이야기의 원천이 되어왔던 말과 글의 형식으로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 날 말 언어인 노래와 음악, 그리고 글 언어인 시, 소설, 영화 대본과 같은 문학적 글쓰기의 사례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
“더 나아지려는, 더 잘 살아보려는 다들 별로 다르지 않은 우리의 본능.”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실험적인 형태로 음원을 내놓는 대중음악가 윤종신은 올 해 2월 28일 치유본능이라는 노래를 내놓았다. 특히, 해당 노래를 만들면서 OpenAI 의 생성형 AI인 ChatGPT 를 활용하여 가사를 작업했다고 전했다. 특히, ‘세계의 석학이 사랑과 이별에 대해 가지 견해’, ‘인간의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욕구와 본능’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별의 과정에서 사람은 충분히 회복할 수 있고, 회복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노랫말을 적었다고 한다. (“잘 살겠다는 본능은 지난 사랑이 고마워 또 잃고 얻고 그 반복의 날을 우린 살잖아 우린 그렇게 생겼어 그렇게 타고난 거야”)
영국의 밴드 비틀즈가 1996년 이후 27년 만에 신곡을 공개한다는 소식이 영국 현지 시간 2023년 6월 13일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폴 매카트니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1980년에 사망한 존 레논과 2001년에 사망한 조지 해리슨이 음반 작업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과거 데모 테이프를 통해 곡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곡은 비틀즈 마지막 앨범의 미완성 곡이었지만 인공지능으로 목소리를 복원했고 이후 일반적인 앨범 믹싱 과정을 거쳤다고 밝혀왔다. 해당 음원은 23년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2023년 4월 갑자기 유튜브 채널 “WhoAmI AiCover”에 미국 유명 싱어송라이터 브루노 마스의 뉴진스 커버곡 “Hype Boy” 음원이 올라왔다. 외국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비슷한 톤으로 한국어 가사를 노래한다. 사실 이 곡은 실제로 브루노 마스가 뉴진스의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다. 이는 한 유튜버가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 커버한 것이다. 해당 영상이 올라온 뒤 다양한 버전의 인공지능 기반의 음원들이 올라왔다. 에미넴의 “아무 노래(지코)”, 아아리아나 그란데의 “큐피드(피프티프티프)”, 프레디 머큐리의 “양화대교(자이언티)”, 마이클잭슨의 “신호등(이무진)” 등. 그 외 국내 가수의 해외 노래, 개그맨의 국내 노래 등 다양한 버전의 커버곡들이 밈처럼 손쉽게 만들어지고 있다.
구글은 학술지를 통해 2023년 1월 텍스트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어 주는 Music AI를 발표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만들고 싶은 소리 및 음악을 문장으로 요청하면 그에 적합한 음원으로 만들어 준다. 예를 들어, 요구사항에 음악에 포함되었으면 하는 악기 구성, 음악 장르, 곡의 분위기, 활용처 등 다양한 조건을 이해하고 음원으로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허밍을 녹음하여 올리면 해당 멜로디를 다른 악기로 연주해주거나 특정 이미지를 올리면 해당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동일한 음악의 장르를 바꿔주거나 편곡을 손쉽게 도와준다. 현재 표절 등 기술적, 법적 한계가 있어 서비스를 상용화하지는 않고 샘플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지만, 앞으로 작곡, 연주, 편곡 등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을 줄이는 것입니다. 줄일 수 있는 말이 아직도 많이 있을 때 그 때 씁니다.” - 시를 쓰는 이유 中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인공지능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KoGPT를 기반으로 시를 쓰는 시아가 2022년 8월 8일 첫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했다. 해당 인공지능은 2021년 개발되어 인터넷 백과사전, 뉴스 등을 통해 한국어를 학습하고 약 1만 3천여 편의 시를 통해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아트 그룹인 슬릿스코프는 임의의 언어 선택에서 시적 표현의 가능성을 생각하여 인공지능과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집 “시를 쓰는 이유”는 총 53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계어 0과 1을 활용하여 1부. 공, 2부. 일로 정하였다고 한다. 시 제목을 보면 그럴싸하다. ‘밤중의 밤’, ‘어떤 질문’, ‘무거운 구멍’, ‘방황하는 우주’, ‘음악의 촉각’, ‘시는 분자가 1인 수다.’ 공감각적이거나 의인화된 표현들, 수학이나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도 시 제목으로 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2023년 4월 13일에 KBS 1TV 다큐인사이트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SF 소설을 써봤습니다’ 편을 방영했다.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창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사람과 인공지능이 공동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호기심과 위기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직업 작가들은 GhatGPT를 활용하면서 뜻밖의 표현과 생생한 묘사에 놀란다. 해당 작가들의 결과물은 2023년 4월 3일 출간된 책 “매니페스토”에 담겨있으며 단편 소설마다 공저자로 사람과 ChatGPT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단편 소설의 제목은 각각 “텅 빈 도시”,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 “매니페스토”, “그리움과 꿈”, “감정의 온도”, “오로라”, 펀웨이 파크에서의 행운”이다. 각각의 단편집과 함께 각 작가의 관점에서 개별적인 협업 후기와 협업 일지를 실은 것도 특징적이다.
2023년 3월 30일 기술과학 영상 유튜브 채널 Hashem AI-Ghaili에 인공지능 기반 단편 영화가 올라왔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영상의 대본 뿐만 아니라 이와 밀접한 컨셉 아트, 목소리 등을 창작하는 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영화는 지구에 방문한 외계 문명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주요 국가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를 공격하여 인류 문명이 파멸로 치닫는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상에 등장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현실의 그것과 동일하고 등장하는 외계 문명의 비행체 또한 너무나 실제적이여서 어디까지가 가짜인가 헷갈릴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다. 해당 영상에 대한 한글 자막이 달린 영상은 유튜브 채널 “백색나무”의 영상 “모든 것을 바꿔버릴 AI (6:37-)” 에서도 볼 수 있다.
두 편의 글을 통해 미술과 움직임, 음악과 텍스트의 장르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이 시대에 새로운 높이의 도전과 영향력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 테크놀로지의 가장 먼 거리의 사정권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글에서 보았듯이 오늘 날 테크놀로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 형식과 창조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막연히 두려운 일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느낌과 인식의 지평을 연다는 측면에서 예술가에게 새로운 도구가 주어진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예술적인 창작 행위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이는 현대에 이르러 사실에 대한 재현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더욱 빠르게 어딘가를 향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분명 현대인에게 새로움을 제공한다. 오늘 날 우리는 예술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1961년 시인 김수영은 말했다. “시를 아는 건 전부를 아는 것”이라고. 인공지능은 아는 것을 조합하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모르는 것, 미지의 영역에 대한 감각과 창발적 해석의 가능성은 어쩌면 여전히 사람(“창작자” 그리고 “감상자”)에게 달려있을 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예술 작품, 그리고 미래의 예술 작품은 무작위하게 던진 주사위와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질서정연한 시선 사이 어딘가에 걸려있는 듯 하다. 우리는 지금 그 곳에 서있다.
◽️후원 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앤태크 로얄앤코 에딧시티프로젝트 시댄스
◽️주최 _ 여니스트
editor 김혜연 서민석
* 가장 빠른 공연과 콘텐츠 소식은 아래 인스타그램을 팔로워해주세요.
@_yonist
@yonist_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