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에겐 죄가 있다.
과일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 딸들 덕에 가끔 밥값보다 과일값이 더 든다는 농담 아닌 진담을 할 때가 있다.
그 정도로 과일을 사랑하기에 웬만해서는 과일을 떨어지지 않게 사다 두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은 비도 많이 오고, 마트에도 자주 가지 않았지만, 심지 있는 수박, 싱거운 참외 등 여름 과일을 사는 일에 줄줄이 실패를 했기에 과일을 쉽게 사지 못했고, 그러다가 결국 집에 과일이 똑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은 큰 맘을 먹고 동네 과일 판매점을 두루 살피다가 한 군데에 들어가 복숭아를 구입했다.
"사장님. 이 복숭아 진짜 달아요? 요즘 비가 와서 복숭아 잘못 사면 싱겁다던데..."
"이거 진짜로 맛있어요. 하나 까서 드려 볼까?"
하나 까달라고 해볼까도 싶었는데 가게에서 계산해 달라는 손님, 가격을 묻는 손님들 탓에 쉽게 부탁도 못했다.
그런 내 속내를 들여다보듯 사장님은
"우리 집 과일 맛보고 손님들이 인터넷에도 올리잖아. 먹어보고 맛없으면 가져오슈."
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 그럼, 정말 사장님 말씀 믿고 가져갑니다."
하고 계산을 해버렸다.
생각보다 복숭아 박스는 무거웠다. 집에 들고 오는 내내 이쪽저쪽 손을 번갈아 들며
'무거워도 좋으니 제발 맛있어라.'
속으로 외쳐댔다. 그러나 웬걸. 싱거워서 내 맛도 네 맛도 아니었고, 혹시 다른 건 좀 나은가 싶어 또 다른 복숭아를 잘랐더니 이번엔 복숭아 향도 없는 모양만 복숭아였다.ㅜㅜ
'어쩌지? 이걸 다 황도로 만들어야 하나? 아님 산 데 가서 바꿔야 하나?'
고민 끝에 복숭아 박스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혹시 몰라서 쪼갰던 복숭아도 들고 갔는데 사장님께서 드셔 보시더니 여기 복숭아 정말 맛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니라며 다른 종류의 복숭아와 거스름돈을 더 거슬러 주셨다. 그래도 양심적인 사장님이구나, 동네 장사하시는 분 답다 생각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복숭아를 또 잘라보았다. 그러나 먼저 사온 복숭아보다 조금 나을 뿐 새로 가져온 복숭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숭아 귀신인 아이들도 한 입 먹더니 맛이 없다며 그릇째 들고 나왔다. 그렇다고 또 복숭아를 가지고 과일 판매점에 가기엔 사장님은 또 무슨 죄인가 싶어서 결국 모두 황도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복숭아는 죄가 없다.
그저 햇빛 쐬고 빗물 마시며 필요한 영양분 흡수했는데ᆢ 비가 억수로 왔을 뿐이고
햇빛도 충분하지 못했을 뿐이고 덜 익은 와중에 농부 아저씨 손에 붙들렸을 뿐이고
사장님은 죄가 없다.
그저 도매로 과일을 골라다 팔았을 뿐이고,
어제 맛있던 복숭아와 오늘 파는 복숭아가 서로 다를 뿐이고
모든 과일을 그렇다고 다 먹어보고 판매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나
우리에게 일부 죄는 있다.
국지성 호우가 심해진 것도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진 것도
결국 우리가 만든 생활 이산화탄소, 쓰레기 등이 원인이니까.
그러니 더 이상의 음식물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답정너인 '황도'로 달달하고, 시원하게, 한 개도 남김없이 복숭아를 처리해야지.
그리고
이 장마 끝나고 햇볕 쨍쨍한 어느 날
자연에서 제대로 익은 향긋한 복숭아를
다시 맛보기로 하자.
코로나로 여행도 포기하고, 방학도 짧거니와
그럼에도 계절은 그대로 흐르고 있었구나!
우리가 이 계절을 또 이렇게 지나고 있구나 느끼기 위해서
그 어느 날, 달콤 향긋한 복숭아 향에 위로 한 번 받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