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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주워담기 Aug 23. 2020

완제품을 만드는 사람

시어머님 덕분에 실력이 늘었습니다.

여름철이 되면 정말 싫어지는 것이 있다.

더위, 땀, 장마...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초파리이다.

냉장고 바깥에 보관하는 음식도 없으며, 여름철에 바나나는 절대 사지 않는다. 평소에 쓰는 20리터 쓰레기 봉투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될 때까지 꽉꽉 밟아서 버리지만 여름철 만큼은 10리터 쓰레기 봉투에 어느 정도 쓰레기가 찼다 하면 얼른 가져다 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초파리들을 이길 재간이 없다. 최근에는 부러진 쓰레기통 뚜껑 때문에 초파리들이 더 들락날락 용이하지 않나 싶어 쓰레기통도 새로 바꿨으나 소용이 없다. 매일 쓰레기통을 열 때마다 전기파리채를 들이 미는데도 용케 빠져나가서 나를 놀리는 녀석들. 쓰레기통 뚜껑에 저 녀석들이 싫어하는 향이나 그 무엇을 부착시킬 수 있는 그런 것을 발명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솔직히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초파리는 바퀴벌레 보다도 더 끔찍한 존재이다. 

  초파리가 그렇게 끔찍한 존재가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2년 전, 우리 큰 딸이 돌도 안 됐을 무렵 시부모님께서 직접 캐신 고구마라며 한 박스를 가져오신 일이 있었다. 한 동네에 살기도 하지만 워낙 자식 사랑이 크신 분들이라 좋은 게 생기면 늘 자식에게 먹이고 싶으셨기에 고구마 외에도 시금치, 감자, 양파 등을 자주 가져다 주셨다. 그런데 당시 나의 살림 점수는 참 형편이 없었다. 게다가 난 체구가 작고, 돌도 안된 우리 큰 아이는 덩치가 컸던지라 날마다 아이와 씨름을 하며 보내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그러다 보니 식재료를 푸짐하게 안겨주시는 시부모님의 마음과는 다르게 나에겐 쌓여만 가는 식재료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더구나 초등학생 입맛인 남편은 요리솜씨가 뛰어나지 않은 아내가 만든 나물류의 반찬엔 젓가락도 대지 않으니 그 반찬은 다 내 차지였는데 먹다가 먹다가 음식물 쓰레기로 가다보면 죄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 날도 시부모님이 주신 고구마 박스를 베란다 한 구석에 가져다 놓곤, 한참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며칠 후부터 초파리들이 하나 둘씩 생기더니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루는 옆집 언니가 집에 놀러왔다가 초 파리가 왜 이리 많냐며 음식물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그 때 그 때 버리기에 그럴리가 없다고 했는데 문득 그 고구마 박스가 생각이 났다. 옆집 언니가 가자마자 난 베란다로 나가 고구마 박스를 열었다. 그러자 벌떼 같은 초파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고구마들 한 켠으로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물크러진 가지가 몇 개 보였다. 

 "아~! 가지도 있었으면 말씀을 해주시지. 그런데 우리 식구 중에 가지 먹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당장 물크러진 가지를 음식물 쓰레기 통에 내다버리고 고구마 박스 주변에 참깨 모양의 초파리들 알을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아이를 엎고 부지런히 오르락 내리락, 쓸고 닦고 하다보니 온 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그리고는 눈에 띠는 초파리들을 전기 파리채로 잡아댔다.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아이를 업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열심히 잡았는데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내가 껑충껑충 뛸 때마다 까르르 까르르 좋아했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이후로도 시부모님의 식재료 공세는 계속됐으나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그것을 받아서 주변에 나눠주기도 하고, 나 혼자 먹더라도 없는 솜씨지만 열심히 요리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영 손재주가 없기에 나의 요리 실력은 생각만큼 잘 늘지는 않았다. 친정엄마는 그런 내 요리 솜씨를 알기에 가끔씩 완제품으로 반찬을 해주셨는데 그 때는 

 '역시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는 다르구나. 딸이 힘들까봐 이렇게 완제품으로 해주시고...'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혼 13년차, 저녁상을 준비하는데 작은 아이가 옆에 와서는 이것저것 참견을 했다. 

   "엄마, 나도 요리 하고 싶은데. 할 거 없어요?" 

   "오늘은 도와줄 일이 없는데. 그러지 말고, 식탁에 수저 좀 놓아줄래?"

   "그런 거 말고, 나도 요리 하고 싶어요. 그런데 엄마는 누구한테 요리를 배웠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요리를 잘 하게 됐는데요?"

  요리를 잘 하지도 않지만 하는 법을 특별히 배우지도 않았는데 다행히 우리 딸은 내가 해준 음식들을 참 좋아한다. 

   "글쎄, 할머니들 하는 것 보기도 하고,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해보기도 하고, 그러지. 근데 엄마가 요리를 잘 하나? 엄마가 요리를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닌데.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물론 내 기분 좋으라고 거짓말을 조금 보탰겠지만 그래도 흐믓하긴 했다. 화학조미료도 쓰지 않고, 너무 짜지않게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는 일.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하는 일이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처럼, 어머님처럼. 


  오늘 저녁은 어머님네서 얻어온 가지, 고구마 줄거리, 마늘, 양파를 가지고 저녁상을 차렸다. 

남편 외가에서 따온 가지라고 하는데 진한 보랏빛 윤기가 참 싱싱해보였다. 가지를 살짝 구워서 맛간장과 마늘, 파, 어머님표 메실액기스, 들기름을 넣고 조물 조물 묻혀 냈다. 고구마 줄거리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면서 껍질도 벗겨내 삶은 뒤 국간장과 마늘을 넣고, 들깨까루 까지 넣어 맛깔나게 볶았다. 마늘과 양파는 깨끗이 손질해서 표고버섯과 함께 잘 익은 오리 고기 한 켠에 오리 기름으로 함께 볶아 예쁘게 접시에 담았다.

 가지구이무침, 고구마 줄거리 볶음, 오리고기 야채 볶음,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열무김치. 오늘도 어머님 덕분에 한 상 훌륭하게 차려졌다. 요즘은 김치를 안 먹는 아이들도, 나물류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나물, 김치를 먹어서 그런지 참 신기할 정도로 맛나게 먹는다. 

  별거 없는 저녁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정말 맛있게 사라지는 반찬들을 보며, 

  '어머님이 완제품 반찬들을 매 번 가져다 주셨다면 오늘 이런 저녁상이 가능했을까? 그래,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나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셨던거야. '

하는 생각에 새삼 어머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깨끗이 비워진 접시들을 설거지통에 담고, 넉넉하게 볶았던 한 김 식힌 고구마 줄거리 볶음을 반찬 통 두 개에 얌전히 옮겨 담았다. 하나는 우리 집, 또 하나는 내일 어머님 댁에 가져다 드리려고 한다. 어머님이 하신 반찬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시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어머님 덕분에 제 음식 솜씨가 늘었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제가 완제품 반찬 해드릴게요. 부족한 점 있으면 말씀해주시구요. 늘 건강하시길.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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