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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by 심고


'나'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사람들이나 학교에서 마찰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라난다. 느끼지 못해서 표현하지 못해도 '나'는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던 세 사람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눈 앞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려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슬픔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한다.

책 제목이 '아몬드'는 주인공의 주인공의 머릿속에 남들보다 작은 편도체를(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뜻한다. 즉 우리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책 표지의 무표정한 소년이 무서웠다. 분명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데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기에는 표지 속 소년의 표정은 너무나도 심드렁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몬드라는 제목과 무표정한 소년.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
일단 책은 첫 장부터 관심을 집중시킨다. 어느 날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그 사건에서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이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였지만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주인공. 그리고 책은 주인공인 '나'가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를 꺼내며 사건의 그 날까지 천천히 다가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들을 혼자 키워야했던 어린 엄마. 그리고 7년만에 괴물,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너무나 귀여운 괴물과 함께 돌아온 딸을 더이상 내칠 수 없었던 할멈. 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힘들 수도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아간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이 책은 슬프다.
엄마와 할멈을 잃은 후 소년은 혼자 살아간다. 어차피 소년은 슬픔도 느끼지 못하고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소년은 너무나도 무덤덤해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소년의 입장의 서술에서는 자신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슬픔이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더이상 자신을 걱정하고 무언가를 가르쳐 줄 엄마와 할멈은 없다, 라는 문장 같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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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년에게 친구가 생긴다. 뜻하지 않게 곤이에게서 엄마와의 마지막을 빼앗은 '나'는 곤이의 미움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지만 곧 곤이와 친구가 된다. 아프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과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소년은 친구가 된다.


이 책의 반절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다른 사람 속에 숨어서 살아야만 했던 이야기이고, 반절은 그 소년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감정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 없어도 엄마와 할멈은 소년을 사랑했고 소년은 그것을 알았다. 감정이 있어도 곤이는 윤 박사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엇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두 소년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부분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책을 표현한다면, 처음에는 대체 무슨 일일까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고, 중간에는 슬픔을 담담하는 소년의 서술에 더 슬퍼졌지만 곤이의 등장으로 두 소년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하지만 불안감이 항상 책 속 어딘가에 숨어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울컥, 눈물이 날뻔 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다시 읽고 싶다,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표지의 무표정한 소년이 무섭지 않다. 보이지 않지만, 소년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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