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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곳, 그리고 소년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by 심고

중학생 동호는 함께 누나를 찾으러 나갔다가 실종된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상무관을 찾는다. 신원도 알 수 없이 하얀 천에 덮여 있는 시신들 속에서 정대를 찾던 동호는 상무관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친구 정대가 살아있는지, 정대와 함께 찾으러 나갔던 정대의 누나 정미는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동호는 그곳을 지킨다. 군대가 도청에 들어온다고 한 그 밤까지도.

이 책에 대해 쓰고 싶은 말이 많아서 어떤 말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부끄러워서, 어떤 말이라도 조금이나마 제대로 적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어렵다. 마음에 그 말이 남는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이 책은 어린 소년을 위해 쓰였다. 그날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우리가 봐야 하기 때문에 쓰였다. 그날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니까.
만약에 이 책을 읽으려면 책에 대해 모르고 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기 때문에 리뷰를 읽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영화들이 있지만 나는 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슬퍼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끔찍할 것이기 때문에 보지 않았다. 그게 핑계가 될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도 있는데.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있는데.
주인공인 동호 역시 그렇다. 동호는 아마 정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곳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그곳을 달려갈 수 있을까. 누가 총을 맞고 쓰러진 자신의 친구를 구하러 그곳에 달려가려는 어린 소년의 어깨를 잡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죄책감에 떠나지 않고 그곳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동호를 '너'라고 부르는 것이 그냥 작가의 독특한 서술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호의 이야기가 정대의 이야기가 되면서 시점이 바뀌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면서 이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그리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한 마지막 서술자까지. 에필로그에 남긴 이야기는 아마 작가의 이야기겠지.


친구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기에는 너무 어렸던 중학생 소년에게 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까. 그 사람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총 한 발 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왜 그 사람들이 죽고, 다른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일까. 화가 났다. 나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유족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마음이 아팠다.


한강이라는 작가가 이 작품을 썼고, 그녀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알고 있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많아졌을 테니까.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부끄러움을 잊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있어서 나는 소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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