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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Oct 19. 2017

당신의 봄은 언제인가요?

영화 <봄>

<영화를 안 보신 분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서울에서 내려 온 조각가 준구(박용우)는 몸이 많이 망가져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으며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아내 정숙(김서형)은 준구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줄 작품 활동을 위한 모델로 민경(이유영)을 눈여겨 본다.

민경은 남편을 베트남 전쟁에서 잃고,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자신의 집에 눌러 앉아 남편 행세를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와 살고 있다. 두 아이를 위해, 비록 진짜 남편도 아니며 폭력과 도박을 일삼는 남편을 위해, 민경은 '누드 모델'이 되기로 한다.
민경을 통해 다시 조각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게 되는 준구와 그 모습을 기쁘지만 한편으로 슬프게 바라보는 정숙. 그리고 누드모델, 예술이라는 생소한 일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민경.

하지만 그 시대에 누드모델에 대한 잘못된 시선이 잠시 찾아온 세 사람의 평화를 망가트린다.



우리는 '봄'을 인생에 찾아오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시기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도 '봄'은 그런 의미이고, 그래서 여름 끝에 찾아온 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봄날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복한 모습을 통해서 맞기도 한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김서형이 맡은 준구의 아내 정숙을 보는 것이 그러하다. 오직 준구만을 걱정하고, 그가 조각을 다시 하며 생기가 생긴 것을 바라보며 함께 기뻐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인데도 말이다. 거기다 민경도 살뜰히 챙긴다. 질투할 법한 상황에서도 남편을 믿는건지, 그렇다해도 사랑에 변함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동요하지 않고 이해하고 더 잘하려고 하는 정숙의 모습이 나에게는 제일 아름다운 캐릭터로 느껴졌다.                                                    


김서형은 센 캐릭터를 많이 맡았었는데 교양 있고 지고지순한 아내 역할도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이유영은 전라의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 모습이 야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어느 정도 후부터는 행복해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그녀의 불행한 삶을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게 한다.
이유영을 <간신>에서 봤을 때, 주인공인 임지연보다 더 예쁘고 눈에 들어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연기도 참 잘하는 배우인 것 같다.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어지는 배우.     

                 


준구와 민경. 둘의 사이는 보는 내내 아슬아슬하다. 처음에는 그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모델을 시작한 민경은 점점 예술에 눈을 떠간다. 그리고 그런 민경을 보는 준구도 오랜만에 밝게 웃는다. 함께 웃으며 작업을 하고, 차를 타고, 서로를 걱정하고.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걸 바라다가도 정숙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데...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가졌던 불안한 마음이 무색하게 조각은 준구의 얼굴로 완성된다. 민경의 웃는 모습으로 완성되어 정숙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준구가 찾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민경의 얼굴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 녹아난 삶이었을까. 그의 마지막 작품은 그 자신으로 남는다.


준구는 민경을 위해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예술에 대한 생각을 바뀌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민경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얻었지만, 그래도 그가 사랑했던 것은 오직 정숙이었고, 정숙에게 못다한 사랑을 고백한다.

권총으로 자살한 후에.                                                                        


주인공이 죽었으니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숙은 준구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의 마음이 준구에게 충분히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민경은 자신을 괴롭히던 누군가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


준구는 죽었지만 그가 왠지 웃으며 논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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