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고 Jul 22. 2018

오랜만이네요 엄마

잊고 살아서 미안해요



"가족관계증명서 하나 떼어주세요."

"누구 기준으로 떼시는 건가요?"


하루에 수십 번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렇게 물어보지 않으면 민원인이 가족관계증명서에 본인이 원하는 사람이 안 나왔다고 화를 내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나도 창구에 앉아있기 전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누가 나오는지 몰랐었기 때문에 천천히 설명을 한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본인 기준으로 발급하시면 본인, 부모님, 배우자, 자식 이렇게 나와요."


그날도 똑같은 물음이었고, 똑같은 대답이었다.


"내 기준으로 떼어주세요."

"수수료 천 원입니다."


서류를 손에 받아 드신 연세가 지긋한 노부인은 창구에 서서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셨다.


"여기 우리 어머니 이름이 있네."

"선생님 기준으로 떼시니까 선생님 부모님 성함이 나오시죠. 가족관계증명서잖아요."

"우리 엄마 이름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요."


문득 서류에서 발견한 엄마의 이름이 반가워 손에 쥐고 몇 번을 바라보고, 괜스레 쓰다듬어보는 노부인을 보면서  갑자기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얼마나 긴 세월 본인의 어머니 이름을 잊고 살았으면 저러실까. 혹 본인의 이름도 잊고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만 살아오셨던 것은 아닐까.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서류를 바라보던 노부인은 동사무소를 오고 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처럼 그 자리를 떠났지만, 왠지 그 모습은 내 마음에 남았다.


삶이 바빠 당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이.

마치 그리운 누군가를 그리듯 조심스럽던 손짓이.

입밖에 꺼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아릴 것 같던 그 말이.


"오랜만이네요.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꿈이 있는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