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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Mar 13. 2019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처음이라서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4살 소년인 쿤에게 갑자기 생긴 여동생 미라이는 사랑스러운 존재이기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빼앗는 미운 존재일 뿐이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자신보다 미라이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쿤. 그런 쿤 앞에 사람의 모습이 된 강아지 유코와 중학생 모습의 동생 미라이가 나타나는데...

쿤은 갑자기 생긴 여동생 미라이가 달갑지 않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들 미라이만 이뻐하고 쿤에게는 관심이 없다. 거기다 미라이 때문에 엄마에게 혼나기 일수다. 쿤은 미라이 오빠니까 미라이를 잘 보살펴줘야 한다는 말은 4살 어린아이인 쿤에게는 너무 버겁기만 한 요구사항들이다. 쿤에게 미라이는 갑자기 나타나 엄마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간 경쟁자일 뿐이다.

그런 쿤 앞에 중학생의 모습을 한 미라이가 나타난다. 미래의 미라이는 쿤에게 부탁을 하고, 쿤은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사람의 모습이 된 강아지 유코와 함께 열심히 뛰어다닌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애정이 샘솟지는 않는 법.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여중생이 미래의 미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미라이에 대한 쿤의 질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4살 아이의 시점에서 갑자기 생긴 여동생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갑자기 오빠가 된 건 쿤뿐만이 아니라는 것. 갑자기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된 쿤의 부모님도 쿤처럼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 뿐. 그렇게 두 아이의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 아빠에게 여동생을 질투하는 쿤은 안쓰러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미래의 미라이가 쿤 앞에 나타난 것은 쿤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엄마 아빠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쿤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처럼 방 안을 어지럽히던 어릴 적 엄마를 만나고,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한 남자의 모습의 증조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누구나 관계 속 이전에 그냥 '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관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개인이 있다는 것을 4살 꼬마 아이인 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쿤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원해서 혹은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새롭게 생긴 관계는 낯설고 가끔 버겁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맞춰나가는 것. 쿤이 미라이에게 건넨 바나나처럼 그 관계를 위해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손을 잡는 순간 나는 '나'이자 누군가의 '무엇'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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