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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May 12. 2019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닐 수도 있는, 엄마

영화 <당신의 부탁>


사고로 남편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효진(임수정)에게 남편의 아이 종욱(윤찬영)을 맡아 키워달라는 시댁의 연락이 온다. 효진은 처음에 자신이 겨우 얼굴 몇 번 본 사이인 남편의 아이를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아니 왜 길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종욱을 데려오기로 결정한다.32살인 효진과 16살 종욱은 그렇게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엄마 같지 않고, 아들 같지 않지만 모자 사이인 두 사람. 효진은 어떻게든 종욱과 잘해보려 하지만 종욱이 친엄마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민 끝에 효진은 종욱의 엄마를 직접 찾아주기로 결심하는데...


영화 속에서 임수정은 무기력한 얼굴로 나온다. 32살에 남편을 잃고, 친구와 공부방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는 여자. 그러다 갑자기 아들이 생긴다. 그것도 16살이나 먹은 아들이.효진은 공부방도 정리하고, 차도 팔고, 썸 타는 남자도 정리하며 나름 '엄마'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자신에게 살갑게 구는 것도 아닌 종욱인데도 효진은 아이가 들어오지 않으면 걱정하고, 대화를 위해 계속 말을 걸며 나름 엄마의 역할을 해간다. 하지만 종욱이 자신 몰래 친엄마를 찾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효진은 고민을 한다. 친엄마를 찾아줘야 하는가.

임수정이 엄마라니. 그것도 고등학생의.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또 그래서 잘 어울렸다. 자신의 기분을 숨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마냥 어른인 척하지 않는 사람. 함께 살 규칙도 만들고, 아이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도 보고, 아이의 비밀을 알기 위해 아이의 친구에게 몰래 연락도 하는 사람. 어떻게 해야 엄마가 되는지도 모르고, 엄마가 되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 그런 효진의 모습이 더 진정한 '엄마'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줬다.

효진의 썸남으로 한주완이 나오는데, 나는 한주완을 통해 효진이 남편과의 사별에서 벗어나 다시 32살 싱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종욱을 선택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효진의 말처럼 말이다.      

종욱의 친구로 등장하는 주미(서신애) 역시 처음에는 철없는 여중생 같지만 영화의 목소리 중 하나이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진 주미는 아이가 없는 집에 자신이 낳을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종욱은 자신이 아빠가 돼주겠다며 주미에게 함께 아이를 키우자고 하지만 주미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자신과 종욱이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안정된 가정에 아이를 원하는 집에 아이를 더 잘 키워줄 거라고, 그녀도 확신은 없었지만 그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렇게 믿는다. 이 부분도 꼭 자기가 낳아야만 잘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제목인 <당신의 부탁>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효진의 부탁일 수도 있고, 종욱의 부탁일 수도 있고, 그 누군가의 부탁일 수도 있다고. 나는 영화 보기 전에는 남편이 효진에게 죽기 전에 종욱을 부탁하거나 해서 효진이 종욱을 돌보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효진에게 마음 터놓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엄마도. 그녀가 종욱과 함께 하기로 결정 한 것을 가장 이해 못 하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 효진의 결정을 지켜봐 주고 함께 고민해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다. 결국 엄마와 아들의 눈물겨운 모자 탄생 같은 장면은 없다. 끝날 때까지도 효진과 종욱은 데면데면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 억지로 감동을 짜내지 않는 스토리가 좋았다. 결말까지도 효진과 종욱은 모자사이로 보이지 않지만, 효진과 종욱이 같은 방향을 보며 말하기 시작했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곧 가능할 것이다.


영화가 끝나기 전, 종욱이 자신이 찾던 엄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부분이 왜 영화 마지막에 들어갔을까 처음에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꼭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모자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효진과, 연화를 통해 계속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라는 말은 한 명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라는 말은 때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Mothers'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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