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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Jul 13. 2019

그가 쓰는 일상 속의 시

영화 <패터슨>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패터슨에 사는 버스 기사이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잠든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손목에 시계를 찬다. 그리고 시리얼을 먹고, 출근해 운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시를 쓴다. 버스 운행을 하며 종종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퇴근을 한 후에는 강아지 마빈과 산책을 하고,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또 남은 시간에는 시를 쓴다. 그의 시는 그런 그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탄생한다.

영화는 '패더슨'이라는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같은 장소에서의 하루의 시작을 보여주고, 그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잔잔하게 혹은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그는 같은 길에서도 다른 것을 보고, 작은 성냥갑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발견한다. 

나는 패터슨의 아내 로라가 어떤 사람인지 좀 의심스러웠다. 패터슨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고, 그녀도 패터슨을 사랑하지만 가끔 그녀의 행동은 너무 철없어 보였다. 패터슨은 늘 알 수 없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녀는 늘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라가 패터슨의 시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패터슨도 약간 철없어 보이는 로라의 행동들까지 모두 사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신 스틸러로 꼽는 강아지 마빈. 나는 처음에는 로라가 패터슨에서 마빈을 산책시키는 걸 당연하게 강요하고, 그래서 패터슨이 마빈을 바 앞에 묶어 두고 술을 마시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패터슨에게 그런 시간을 주기 위해 로라가 일부러 산책을 권유한 것 같았다. 

의문이 들었던 점은 패터슨이 로라 앞에서 보다 바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더 편안해 보였다는 것이다. 버스가 멈춘 사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로라와 바 주인이 똑같은 말을 하는데 패터슨이 웃는 것은 바 주인 앞에서만이다. 패터슨이 로라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데, 왜 본인의 감정을 숨기는 것처럼 보이는지 의아했다.영화 중반 정도에 마빈의 비밀이 하나 나온다. 이것도 영화 속 귀여운 일상 중 하나. 생각해보니 마빈은 영화 속 사건의 중심인물, 아니 중심 캐릭터네.

패터슨의 시는 일상적이지만 아름답다. 무심하게 쓴 것 같지만 세심하다. 담백하다. 그의 일상처럼.영화 속에서 패터슨이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소녀, 일본 여행객) 당신은 시인인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인(시를 쓰는 사람) 이었다. 시인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해준다. 빈 노트에 자신들만의 시를 쓸 수 있기를. 패터슨이 정말 그런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영화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곳이라면, 위대한 시인이 시를 썼던 그런 곳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혹시 시인이세요?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패터슨이 사랑하는 로라와 패터슨을 사랑하는 로라가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고, 서로가 부르는 노래와 시를 사랑해주며 단조로워 보이지만 매일매일이 조금씩 다른 그런 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내 빈 페이지를 채울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갑자기 로라를 나쁘게 생각했던 게 후회스럽다. 나는 그런 사람도 못 되는 주제에.




(전략)

There'll never be anyone like you.

How embarrassing.

- 영화 속 패터슨의 시 중 'Pump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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