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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Aug 11. 2019

소풍

낯선 곳에서의 하루


기차를 타고 낯선 곳에 내렸다.


처음 와 보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지 않았다.

이 곳은 어떤 곳일까,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역에 도착하면 어디서 찾아야 할지 좀 걱정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해줘서 사실 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혹시 알아보지 못할까 봐 일부러 만났던 그 날의 옷을 입은 거라고 했다.

그때와 같은 것 같기도 했고, 그때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날씨는 너무 덥고

해는 너무 쨍쨍해서 땀이 났다.

그래도 하늘은 새파랗게 예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덥지만 좋은 날씨,

좋지만 밖에 있을 수는 없는 날씨였다.

조금 더 하늘을 보고 싶었지만 일단 카페로 들어가기로 했다.


카페에는 재봉틀이 엄청 많이 있었다.

뜨개질로 만든 작품도 있고, 에코백도 있었다.

사장님은 어린 딸과 함께 뒷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즐거워 보였다.

우리도 같이 웃었다.



그냥 돌아가긴 아쉬워서 근처에 향교로 향했다.

해는 조금씩 기울고 있었고, 새파랗던 하늘은 구름이 섞여 연한 파란색이 되어있었다.

파란 물감에 흰색 물감을 섞어서 하늘색을 만드는 것처럼

파란 하늘에 흰색 구름이 섞여있었다.


하늘을 자주 바라봤다.

매미 소리도 듣고,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기도 했다.

화려한 단청과 단아한 하늘.

두 가지가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나도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데.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다른 점만큼이나.


내가 이 동네에 산다면 매일 이 곳에 앉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고.

나에게 어울리는 생각인 것 같지만 이 곳에 다시 오지 않을 거잖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이 곳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시간은 나의 기억 어느 곳에 숨겨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했지만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았다.

계속 흘러가 버렸다.


제대로 된 끝은 없었다.

소풍은 길지 않았고,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없었다.

그 순간이 존재했던 것을 우리는 의심할지도 모른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그렇지만 언젠가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떠올리겠지.


- 이건 더워지는 효과음인가 봐요


그 날은 매우 더웠지만 날씨가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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