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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Nov 14. 2016

망원경으로 본다면

직접 만져보러 가야지

강을 보러 갔다가 망원경을 만났다.

가끔 높은 곳이나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에 가면 망원경을 만나지만

500원을 넣고 볼 만큼의 관심은 없어서 그냥 지나치곤 했었는데

언덕 위 정자에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서 있는 망원경에는 돈을 넣는 곳이 없었다.


얼마 만에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는 걸까.

망원경에 조심스레 눈을 대보니 저 멀리 강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살랑살랑 가벼운 바람에 잔잔하게 물결치는 강이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해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혼자 신이 난 나는 이곳저곳 망원경으로 주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강에 떠 있는 오리배가 예쁘게 눈 화장을 한 모습도 보고,

캠핑장에서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봤다.


나를 찾아 언덕을 올라오는 엄마의 모습도 보고,

단풍이 살짝살짝 든 나무들도 보였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귀여운 로봇같이 생긴 망원경과 즐겁게 놀다가 언덕을 내려왔다.


그리곤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멀리 있는 사람을 망원경으로 보면 어떨까?

멀리 있다는 핑계로 잘 살펴보지 않았던 그 사람의 좋은 모습들이 조금씩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망원경으로 보면 어떨까?

그 사람의 눈 코 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너무 가까이서 보면 때로는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까지 볼 지도 모른다.


언덕을 내려와 직접 단풍 든 나무를 보고,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봤다.

그것들은 아까처럼 코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자주 생긴다.

그 사람들과 직접 얘기해보고 다가가고 싶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의 말에 흔들릴 때도 있다.

그 이야기들은 망원경처럼 나에게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깝게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나를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은 다르다.

어떤 것의 도움도 없이 나의 눈으로 온전히 그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그 사람에게 직접 손을 뻗어본 후에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망원경을 통해 봐도 변하지 않는 것은

파란 물결, 하얀 들꽃, 그리고 언덕 위의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시는 엄마의 얼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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