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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Oct 13. 2019

나의 집, 나의 우주

[KBS 드라마 스페셜] 집우 집주

KBS 2019 드라마 스페셜 1부 - 집우 집주

건축사무소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수아(이주영)는 고객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멋진 집을 디자인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집'에 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그런 집마저 보증금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처하고, 어차피 새로 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면 같이 시작해보자는 남자친구 유찬(김진엽)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생각에 설레는 수아. 하지만 그 설렘은 곧 현실과 충돌하며 부서지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찬이 사실은 부잣집 아들인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부모님의 집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시작한다. 과거의 집, 현재의 집, 그리고 미래의 집 속에서 수아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유찬 씨는 몰라.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결혼해서 부족하게라도 함께 잘 살아보려고 했던 남자친구는 이제 수아에겐 자신을 감추고 싶은 어려운 존재로 변한다. 유찬은 변한 것이 없는데 수아만 변한다. 유찬에 집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자신의 집을 감추고 싶어 하고, 부모님까지 그 일에 동원시켜 결국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준다. 하지만 부모님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수아를 그렇게 만든 것이 본인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가(本家) 아무리 위대한 건축가도 고칠 수 없는 과거의 공간이자, 본인의 취향이나 노력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선천적인 시작점.'

내 주변에도 어디 사는 거지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싫어서 나도 내가 어디에 사는지 숨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수아의 마음이 꽤 여러 부분에서 이해가 갔다. 그리고 씁쓸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낡고 좁은 집일 우리 집이 어떨 때는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용한 이 동네가 좋고, 바쁘지 않고 여유로워 보이는 동네 사람들이 좋고, 작지만 아늑하고 우리 가족이 함께 쉴 수 있는 우리 집이 좋다. 사람들이 집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시선 때문에 오롯이 우리 집을 사랑할 수 없는 내가 싫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기분이 씁쓸해진 것은 내가 리버뷰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마련할 수 있는 주연의 입장이 아니라 그 집을 질투하게 될 수아의 입장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잣집 아들이지만 그런 것은 구속이라도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남자친구. 하지만 조금의 도움은 받으라고 속삭이는 미래의 시어머니. 사는 곳이 신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내가 수아라면 그 안에서 과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집 우(宇) 집 주(宙) 나는 '우주'라는 말이 이 두 한자어로 이루어진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살기 위해 만들어진 집이 삶의 목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이미 알았던 걸까. 나의 집, 나의 우주. 그래도 나는 사람을 집이 아닌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낡은 집이지만 거실에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해서, 창문을 열면 아이들의 등굣길이 한눈에 보여서 '아 이 집이 내 집이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집을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집을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살아가고 싶다. 방음이 잘 안돼서 거실의 티브이 소리와 함께 부모님의 도란도란 말소리가 같이 넘어오는 이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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