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스페셜] 웬 아이가 보았네
조손 가정으로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초등학생 동자(김수인)에게는 가난한 집안 환경과 술에 취해 폭언을 일삼는 할아버지를 피해 숲속 빈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만이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빈 집에 검은 옷, 검은 모자를 쓴 덩치 큰 남자, 순호(태항호)가 이사를 오고, 동자는 그를 피해 도망치다 라디오를 잃어버린다. 라디오를 찾고 싶은 동자와 혼자 조용히 숲속 집에 살고 싶은 순호. 둘은 또다시 숲속 집에서 만나게 된다.
"무섭긴 개뿔. 왜 남자가 그런 걸 칠해? 화장품이랑 원피스도 아저씨 거지?"
고릴라 같은 겉모습을 한 순호는 사실 여자가 되고 싶은, 아니 원래 여자인데 남자로 잘못 태어난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며 이제 정말 '순호'가 아닌 '순희'가 되고 싶은 순호. 그런 순호의 비밀을 약점 잡아 소원 세 가지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당돌한 수인. 순호는 제발 조용히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수인과 집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수인이 순호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동네 이장은 수인의 집에 찾아와서 수인을 다그친다. 위기의 상황. 수인은 초등학생답지 않게 똑 부러지게 대처한다. 그리고 순호에게 말한다. 내가 비밀 지켰으니까 떠나지 않을 거지? 순호는 수인의 동그란 눈망울에 마음이 흔들린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어린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남자의 집에 드나든다.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고 할아버지의 학대를 견디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어린 소녀에게 아빠 대신이 되어 줄 사람이 생겼구나, 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 역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런 상황을 보았을 것 같아서 참 마음이 아팠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주는데 주변에서는 그런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한다. 물론 의심은 수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의심이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던 수인을 챙겨주는 사람이 생겼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던 순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준다. 마치 정말 엄마와 딸처럼.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안하지만 또 너무 귀엽다.
드라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로 끝이 났고,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 나는 울고 있었다.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만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두 사람 때문에. 그래도 그 행복한 기억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을 두 사람 때문에.
나도 언젠가 순호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그들은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 한다. 내가 대신 인생을 살아줄 것도 아닌데 무슨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이 드라마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된 사람이고,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거니까.
세상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은 나를 이해해준다면. 그렇다면 내 세상은 밝고 따뜻할 것이다. 오래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