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어릴 적 엄마에게 학대받고 버려진 기억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상아(한지민). 그녀는 사람들에게 미쓰백이라고 불리며 세차, 안마 등의 알바를 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안쓰러워하는 형사 장섭(이희준)이 있지만 상아는 그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그러던 어느 날, 상아는 한겨울인데도 얇은 옷에 슬리퍼만 신은 채 거리에 서있는 지은을 데리고 포장마차에 간다. 그냥 밥만 먹이고 보내야지 했지만 상아는 아동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지은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고, 지은을 데리러 온 지은 부의 동거녀 미경(권소현)이 의심스럽다. 상아는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기도 힘든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애써 지은을 외면하려 하지만 자신을 미쓰백이라고 부르는 지은의 목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만 같은데...
청순하고 귀여운 역할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지민의 캐릭터 변신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미쓰백>.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에는 한지민의 캐릭터 변신뿐만 아니라 연기력, 그리고 영화의 내용까지도 많은 호평을 받았고, 상도 많이 받았던 작품. 특히 나는 최근에 한지민의 드라마 출연작인 <눈이 부시게>를 보고 있어서 한지민이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배우지만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 욕하고, 싸움하고, 정말 눈이 돌아간 것 같은 모습까지 잘 표현했지만 특히 지은이를 볼 때 흔들리는 눈빛에서 상아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부와 동거녀에게 학대 당하는 지은. 씻지도 않고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모습의 아이가 길 한가운데 서있는데도 미쓰백 말고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이 씁쓸했다. 심지어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그 아이가 학대받던 아이였다는 걸 아무도 몰랐고, 경찰은 일을 키우지 말라며 학대받는 아이를 외면한다. '법이 그렇다'. 어찌 보면 나도 이 말 안에 갇혀 사는 사람이지만... 가정 방문 온 동안에만 신경 쓰는 척하고, 사람들 앞에서만 걱정하는 척하며 아이를 학대하다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일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생각하니 무서웠다.
상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장섭. 영화 중간에는 장섭이 상아와 지은을 찾아다니는 게 추적자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둘을 찾아서 자신의 집에 숨기는 모습에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지은의 아픔까지도 사랑해주는 남자. 이런 남자가 곁에 있는데도 자신 때문에 상섭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봐 마음을 열지 못하는 상아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지은을 학대하는 동거녀 미경과 아빠 일곤. 아무리 본인들이 원한 아이가 아이였다고 해도 아이를 학대하고 밖에서는 아닌 척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러웠다. 키우고 싶지 않으면 차라리 아이를 보내줘야 하는데 상아가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면 화를 내고 아이를 가두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괴롭히면서도 소유권을 주장하다니. 자신의 강아지도 소중한 걸 알면서 왜 지은에게만 그러는지.
영화를 보기 전에 한지민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자 옆에서 엉엉 울던 권소현 배우를 봤었다. 영화 속에서는 악역으로 나왔지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 영화의 메시지 전달에 더 큰 힘을 실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상아는 오랜 시간 망설이지만 결국 지은의 손을 잡기로 한다. 지은의 곁을 지켜주기로. 하지만 그건 상아만의 결심이 아니다. 지은 역시 상아를 지켜주겠다고 한다. 두 사람은 엄마와 딸 이런 느낌보다는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세상에 나를 위해주는 단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 어쩌면 지은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상아를 알아본 것 아닐까.
영화 속에서 뉴스에 너무 자주 아동학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 설정은 요즘 실제로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다. 영화 속 지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진짜 실제로 이런 일이 사라져야 할 텐데... 웃을 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는 영화였지만 마음에 무겁게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