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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Dec 31. 2019

추억, 그러나 한 발짝 앞으로

KBS 2019 드라마 스페셜 6부 -굿바이 비원

반지하 방에 살지만 주인아주머니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 집에 찾아오는 고양이, 그리고 그 집에서 쌓은 추억들을 좋아하던 다은(김가은). 오랜 공무원 시험 준비를 끝내고 발령받는 날을 기다리던 다은은 사무실과 가까운 오피스텔을 계약하게 된다. 떠나기로 마음먹고 집을 둘러보는 다은은 옛 추억들에 사로잡히고, 방에서 발견한 50만 원이 든 돈 봉투는 주인을 알 수 없어 찝찝하기만 하다. 결국 다은은 이 집에 전에 살던 사람을 찾아 돈 봉투를 돌려주려 하는데...

우연히 옷장 위에서 찾은 하얀 봉투 속 현금 50만 원. 다은은 그 돈이 친구 경혜의 것인지, 아니면 전 남자친구 현준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에 살던 집주인 것인지 궁금해한다. 경혜는 꽁돈이니까 얼른 써버리자고 하지만 다은은 왠지 남의 돈에 손을 대는 것 같아 마음이 찝찝하다. 떠나지 못하는 오래된 집처럼 다은의 주변에 아직도 맴돌고 있는 전 남자친구 현준도 자꾸 마음에 쓰인다. B1을 떠나는 것이 과거의 추억들을 떠나는 것 같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현준이 다은을 위해 집에 돈을 숨겨놓고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헤어진 사이인데도, 이미 떠난 사이인데도 비 오는 날 창문을 닫아주는 그 마음이 다은과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웬걸. 창문을 닫아준 것도 다른 사람이었다니. 다은도 나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힘든 시기를 보냈던 집, 그 집에서 함께 살았지만 이제는 헤어진 연인, 이사 갔는데도 전에 살던 집 주위를 맴돌며 다은을 도와주려 했던 전 세입자. 그리고 가족.  갑자기 가족이 후반에 튀어나오는데 다른 장치들은 궁금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 각자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건지 좀 혼란스러웠다. 물론 오래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1화 <집우 집주>'에 이어 전혀 다른 느낌의 '집'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오래된 집을 떠나는 것이 추억을 딛고 새로운 한 발짝을 내딛는 모습으로 그려져서 좋았다. 함께 꾸던 달콤한 꿈은 사라졌지만 이제 다은은 새로운 곳에서 혼자 눈을 뜰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모든 걸 털어내는 것 같은 엔딩이 좋았다.

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름답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추억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야 하지 않을까.

굿바이 B1,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되기를.



<결말 포함>

다은은 고향집을 찾아가고 아빠에게서 엄마가 치매가 심해지면서 중요한 물건들을 장롱 위에 숨기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드라마 중간중간 다은이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은 엄마는 돌아가셨고 다은은 대답 없는 통화를 해온 것이다. 다은이 취직하면 좋은 구두를 사주겠다던 엄마의 현금 50만원. 다은은 그 50만원으로 새로운 집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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