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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Dec 14. 2016

백수의 하루

편안함과 불안함 속에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뭐하고 지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백수다. 아주 여유롭고 한가로운 백수.


뭐하고 지내냐고 묻는 말이 나는 우물쭈물 그냥

"집에 있어."라고 대답한다.


그럼 다음 질문이 찾아온다.

"집에서 대체 뭐해?"


"그냥 뒹굴거리지 뭐."


자세하게 설명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책을 붙잡고 있거나 영화를 보는 나를 우리 집 식구들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어디 가서 책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반절의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안다.


하루에 반절은 잠을 잔다.

공부를 하면서 체력이 약해져서 그런지, 그때 잠에 시달렸던 게 너무 힘들었어서 그런지.

아니 사실 원래부터 나는 수업시간에도 자는 아이였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수업 시간에 맨날 자는데 시험은 잘 보니 점수를 안 줄 수도 없고. 어휴."

생각해보니 나는 얄미운 학생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반절은 글을 쓰거나 글을 읽으며 보낸다.

글을 쓰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음악을 듣고, 가끔 청소도 하지만 내 방은 매일 지저분하다.

이석원 작가의 책 <보통의 존재>에서 나오는 글이 너무 지금 내 모습이라 공감하기도 한다.

보통의 존재(이석원) 中 



운동도 안 한다. 

마음은 다이어트를 해서 예뻐지고 싶은데, 몸은 귀찮아서 널브러져 있다.

살을 안 뺀 여자는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데

어차피 꽝이 나올 거라면 그냥 안 긁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처음에 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불안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일을 시작하고 혼자 남겨졌을 때 나 혼자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분명 내 자리가 있을 텐데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한껏 게으름뱅이로 살겠다.

우물쭈물 고민하다가는 맘껏 놀지도 못하고, 일하지도 못하며 시간을 보낼 테니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시간을, 아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시간을 

오직 나를 위해서 써야만, 나만 생각해야 백수로 살 수 있다.


백수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편안함 속에서 끊임없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 편안함과 불안함 속에서 나는 또 어른이 될 테니까.


괜찮다.

어떤 시간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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