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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Jan 16. 2021

갈라진 틈이 만든 함정

[2020 KBS 드라마스페셜] 크레바스

이 포스팅에는 작품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고 어린 딸 다은과 혼자 남겨진 상현(지승현). 식품기업 영양사인 수민(윤세아)은 자신의 남편 진우(김형묵)의 제의로 서울로 온 상현이 혼자 어린 딸 다은을 키우는 것이 신경 쓰여 반찬을 만들어다 주고, 다은을 돌봐준다.


그런데 뭔가 단순히 남편의 친한 동생과 형수님의 사이라고 하기엔 미묘한 두 사람. 사실 두 사람은 직장 동료였고, 진우에게 수민을 소개해준 것이 상현이었다. 형수님이기 이전에 친구였던 수민이 자신의 딸 다은을 정성껏 돌봐주는 모습을 상현은 말없이 바라본다.

한편 수민은 집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들은 유학에 가서 얼굴을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는데 자신과 상의도 없이 아들의 귀국을 취소한 남편에게 화를 내보지만 남편 진우는 수민의 마음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 돈을 벌어서 유학 보냈으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남편을 보며 수민은 지쳐간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현과 다은에게 점점 더 마음을 쓰던 수민은 결국 상현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서 행복한 수민. 상현과 다은의 곁에서 안정감을 찾고 행복을 느끼지만 점점 상현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녀에게 무관심하던 남편까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게 되지만 수민은 상현과 다은에게 점점 더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국 진우가 아는 것에 부담을 느낀 상현은 수민을 밀어내고, 수민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상현은 수민에게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니 제발 사라지라고 말하고, 수민은 상처를 받는다. 상현은 수민을 사랑한 게 아니라 아내의 빈자리를 잠시 채우기 위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미 모든 마음을 내어줘 버린 수민은 홀로 남겨진다.

결국 수민은 남편과 이혼하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상현은 이혼한 진우를 뻔뻔하게도 위로해주지만 결국 진우는 수민을 흔든 것이 상현이라는 것을 눈치채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빙하 위에 갈라진 틈을 크레바스라 한다고 한다. 그 함정에 빠지면 살아남아도 나올 수가 없다는데 사람들은 그 함정에 빠지곤 한다고. 상현은 말한다. 저런 게 있는 줄 알면서 왜 가는 거야. 수민은 크레바스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수민에게는 틈이 생겼다. 서로 각자 따로 떨어져 가족의 삶을 잃은 자신의 가정이 만들어낸 분열로 인한 틈. 그 틈 때문에 상현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그것은 그냥 함정이었다.  상현은 수민과의 젊은 시절에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저 비겁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아니라고 나를 속이며 계속 나아가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크레바스에 비해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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