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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Jan 17. 2021

연약하나, 뜨거운 복수를 위하여

[2020 드라마스페셜] 나의 가해자에게

이 포스팅에는 작품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진우(김대건)은 자신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기간제 교사 성필(문유강)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린다. 고등학교 시절, 성필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진우. 새로 오는 기간제 교사를 위해 정성껏 OJT 자료까지 준비했던 진우는 몹시 당황하지만 성필은 진우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이사장의 손녀인 희진은 새 학기부터 진우의 반이 되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온다. 하지만 사실 희진은 진우의 과거를 알고 성필 대신 진우를 정교사로 뽑아줄 테니 자신의 학교생활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진우는 희진이 말하는 도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성필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제의를 수락한다.

새 학기 첫날. 교실에 들어간 진우가 목격한 장면은 소화기를 뒤집어쓴 소녀 은서의 모습이었다. 희진은 은서가 교실에서 담배를 피워서 어쩔 수 없이 소화기를 뿌린 것이라고 말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진우. 희진은 공부만 하기에는 재미가 없으니 자신이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은서를 괴롭히는 것을 모른 척하라고 진우를 압박한다. 

은서를 감싸려다 학교에 미움을 사게 된 성필과 은서를 모른 척하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게 된 진우. 진우는 이 상황이 너무 괴롭지만 한편으로 성필에게 지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은서가 자꾸 맘에 걸리는 진우. 노란 머리에 욕설을 내뱉고, 스스로 못된 행동을 하지만 진심으로 반성문을 쓰고 오히려 교사인 자신을 걱정해 그냥 모른 척하라는 은서의 말에 진우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한편 희진은 성필에게 진우가 자신이 괴롭혔던 학생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성필은 은서가 아닌 희진의 편에 서기로 금방 마음을 바꾼다. 진우에게 비아냥대며 '너도 이제 괜찮잖아'라고 말하는 성필. 그 말에 진우는 성필에게 주먹을 날린다. 왜냐면 그는 아직도 괜찮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는 까맣게 잊었지만 피해자는 절대 잊지 못했기 때문에.

은서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자퇴를 하고, 그런 은서의 마지막 하굣길에 비가 오자, 은서에게 우산을 내밀었던 유민이 희진의 다음 타깃이 된다.  

끝나지 않을 희진의 폭력과 은서를 외면했다는 사실, 그리고 본인이 교사가 되면서 했던 다짐을 떠올리며 진우는 결국 희진을 학폭으로 교육청에 신고한다. 희진 쪽에서는 이사장이 가진 권력으로 진우의 학폭 신고를 무마하려 하고, 진우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자신이 학교 폭력 당했던 영상을 보여주며 모른 척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희진'이라는 존재가. 희진이 이사장의 손녀이기 때문에 교사들의 희진의 눈치를 보고, 희진을 그것을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에 이용한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어차피 희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우 역시 그래서 희진에게 계속 끌려다닌다. 복수를 해주겠다는 희진. 희진의 말은 달콤하다. 성필 같은 사람은 교사가 되면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서 진우는 희진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아닌 성필이 정교사가 될 테니까.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고, 성필 같은 사람이 없는 학교를 꿈꿨던 진우는 오히려 학교폭력을 방관하게 된다. 하지만 진우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 없다. 정의란 말로만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진우가 한 '네가 도와달라고 안 하는데 어떻게 알고 도와줘' 이 말은 참 비겁했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은서는 도와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안다.  은서는 이미 그런 사회를 너무 잘 알아버렸고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본인이 악역을 자처하기로 한다. 자신 하나 희생하면 다른 아이들도, 교사들도 모두 피해 입지 않으니까. 은서는 오히려 자신보다 진우를 걱정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었지, 미안해. 근데 지금은 괜찮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잊지 못했다. 괜찮은 척 살고 있는 것이지 괜찮지 않다. 매번 다시 그 시간, 그 장소로 돌아간다.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 괜찮지 않다. 

이 드라마가 드라마라는 것이 슬프다. 현실에는 분명 희진, 성필이 있을 텐데 과연 진우는 있을까. 모든 걸 포기한 은서는 몇 명이나 될까. 한번씩 생각하지만 학교뿐만 아니라 어디든 존재하는 권력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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