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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Jan 18. 2021

회사에게 울어본 적 있어요?

[2020 드라마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

이 포스팅에는 작품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안나(고준희)는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판교에서 일하고 있다. 안나의 회사 이름은 '우동마켓'. 지금 우리의 당근마켓 같은 회사인데 작은 기업이지만 실리콘 밸리의 근무 환경을 추구하는 사장 데이빗(오민석)의 지휘 아래 기존의 조직문화와 신식 조직문화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한 조직 생활을 하고 있다.

위계 서열 없는 사무실을 추구하는 데이빗은 커피값 50원을 아끼기 위해 믹스커피의 종류를 바꾸지만 부하 직원들은 커피믹스를 한번에 2개 넣어 타먹는 것으로 데이빗에게 소심한 반항을 한다. 

자신은 삼각김밥을 먹어도 자신의 차는 고급유를 넣어야하는 데이빗의 허세가 직원들의 고개를 절로 젓게 하기도 하지만 정작 데이빗은 자신이 소통하는 신식 CEO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나에게는 회사에 데이빗보다 더한 고민거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회사의 막내인 개발자 케빈이다.  우수한 능력으로 개발자 두 사람의 몫을 하고 있지만 안나가 버그 문제 해결을 요청할 때마다 그가 내쉬는 한숨은 안나를 지치게 한다. 상사 눈치도 모자라 막내의 눈치까지 봐야한다니. 안나는 속에 열이 부글부글 끓지만 데이빗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케빈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안나에게 우동마켓에 갖가지 중고품, 아니 새 제품을 판매하는 '거북이알'을 만나 보라는 미션이 떨어지고, 안나는 내키지 않지만 데이빗이 준 10만원을 들고 커피머신을 사러 나가게 된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만난 거북이알은 평범한 카드 회사 직원. 안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우물쭈물 하다 거북이알이 먼저 건낸 점심식사 제안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유비카드의 공연기획 담당이었던 그녀는 SNS으로 소통하는 클래식 마니아 회장을 위하여 유명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성사시키지만 공연 안내를 회장의 SNS가 아닌 홈페이지 공지사항으로 올린 것으로 회장의 분노를 사게 된다. 예정되었던 특진은 취소되고, 그녀는 다른 부서로 옮겨진다.

옮겨진 부서에서도 열심히 일해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계획한 회원들을 위한 2배 포인트 혜택을 꼬투리 잡아 회장은 그녀에게 '그렇게 포인트가 좋으면 앞으로 1년동안 월급을 포인트로 받으라'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떠난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월급은 포인트로 지급된다. 너무 황망한 마음에 눈물도 나고,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지만 본인만 빼고 세상은 잘 돌아갔고, 그녀는 출근을 해야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포인트로 물품을 구매해서 현금화 하는 것! 그로 인해 그녀는 그 동안 우동마켓에 갖가지 물건을 많이 내놓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안나는 본인이 우동마켓 직원임을 밝히고, 거북이알은 안나에게 본인의 은인이라며 좋은 어플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안나는 본래의 목적인 거북이알 회유에는 실패하지만 그녀에게 동질감과 위로를 받는다.

안나는 거북이알을 통해 케빈에게 줄 선물을 사고, 그도 혼자서 힘들게 애쓰고 있음을 인정하며 먼저 손을 내민다. 

포인트를 현금화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쏟아야하지만, 직원가로 구매하고 근무시간에 주문하고 판매는 점심시간이나 외근을 이용하여 본인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며 만족해하는 거북이알처럼 일의 슬픔과 기쁨 사이 어느 곳에서 자신의 타협점을 찾기로 하는 안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우리에게 최고의 덕담이 된 이 말을 보고 안나는 미소를 짓는다.

장류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미 책으로도 읽었지만 드라마로 보니 마음에 더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혼자 보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회장이 이 차장(거북이알)에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서류를 집어던지고 화를 내는 장면에서, 그녀가 월급 대신 들어온 포인트를 보며 황망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낫다. 부조리하고 말도 안되는데 또 그런 게 말이 되는 이상한 직장생활을 견뎌야 하는 것. 그게 참 억울하고 슬펐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과 삶의 사이의 밸런스는 어디쯤일까.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꿈이 퇴사이지만 또 내일도 출근 걱정을 하며 잠을 청하는 나처럼, 모두들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겠지.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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