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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Nov 22. 2016

[드라마 스페셜] 아득히 먼 춤

닿을 때까지, 닿고 싶어서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연극을 연출했던 신파랑이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빈소에는 비어있는 영정 사진이 쓸쓸히 세워져있고 함께 연극을 했던 사람들이 조문을 온다. 극 작가인 최현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녀는 파랑의 죽음이 실감도 나지 않는다.

현은 파랑의 부로부터 파랑의 자취방에서 물건을 정리해 줄 것을 부탁받는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자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제대로 거절을 하지도 못 한다. 그녀는 파랑의 유작인 <로봇의 죽음> 추모공연을 준비하며 파랑이 그 작품을 통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그가 왜 죽은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무슨 내용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몰입돼서 봤다. 조용하고 쓸쓸한 느낌이 나고 전체적으로 어둡지만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파랑이 계속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져도 소리가 날 거라고, 분명 누군가 들을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파랑이 죽고 난 후 젊은 연극인이 힘들게 예술을 하다가 자살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관심이 된다. 하지만 추모가 끝나고 난 후 대자보와 사진은 처참하게 바닥에 떨어진다. 잠깐의 관심, 동정. 그것도 그에게는 무언가 의미가 있겠지만 더욱더 그의 죽음이 슬퍼지게 만들기도 한다.


연극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모르지만, 학과에서 작게나마 연극을 한번 해봐서 그런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연극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포기하는 사람들이나 연극을 하면서 계속되는 가난과 나아지지 않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 했다. 힘들게 연극하는 작가와 배우, 스태프들에게 월급을 주고 싶어 했고,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의 죽음은, 그런 자신의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렸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과 쏟아지는 연극에 대한 혹평보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자신의 소리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현실과 연극 속의 세상이 교차로 나오는데, 사실 연극은 애매한 내용이긴 했다. '춤을 춰라' 이건 만약 내가 그 연극을 봤어도 어이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춤이란 것이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몸짓이라는 면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이 연극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줬다면, 자신이 힘들다고 얘기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까.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없는 숲은 없다. 다른 나무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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