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소설, <두고 온 여름>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기하.
어느 날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동생이라며 재하를 집에 데려온다.
새로 생긴 가족이 영 불편하고 낯선 기하.
하지만 자신과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자신을 잘 따르는 재하에게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대학 진학과 함께 기숙사로 떠난 기하로 인해
네 가족 사이에는 다시 거리가 생기게 되고,
결국 기하 부와 재하 모는 이별하게 된다.
그렇게 각자 어른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
어느 날 그들은 우연처럼 재회하게 된다.
책의 제목은 '두고 온 여름'인데
기하와 재하가 두고 온 것이 단순히 여름이 아닌
함께했던 기억과 소중한 추억임을 알 수 있다.
기하와 재하는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대한다.
기하는 아버지가 데려온 재하와 재하의 어머니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재하와 재하의 어머니는 기하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눈치를 본다.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재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기하지만
재하를 데리고 병원 가는 일을 도맡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진료 후 둘이 같이 중국 냉면을 먹고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나중에 재하 입장에서의 서술을 보면 같은 음식에 대해
두 사람이 서로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하와 재하는 서로가 중국 냉면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서로를 생각해 늘 같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했었음을.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
- 성해나 <두고 온 여름> 본문 중
결과적으로 기하와 재하는 진정한 형제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했던 기억을 둘 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순간순간 그리워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인 '두고 온 여름'은 기하와 재하가 함께했던
그때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뭔가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이 편지를 받을까요.
재하야, 다정히 부르며 이마를 쓸어주는 아버지일까요.
희고 따듯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는 어머니일까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가만히 미소 짓는 형일까요.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오오누키 씨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미처 못다 한 말이 봉해진 편지를요.
- 성해나 <두고 온 여름> 본문 중
기하와 재하,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이.
그리고 그들이 보낸 그 시간들은 정말 예쁘고 소중한데 결국 헤어져야 했고,
그 후에 그들을 기다린 것이 더 힘든 삶이었다는 게 슬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때 두고 온 여름의 기억이
더 애틋하게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소설 속 가족의 이야기일 뿐인데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새롭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기하와 재하처럼 이별하는 형제보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좀 더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가족이 많기를, 어렵겠지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