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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요?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by 심고

82년생 김지영 씨는 그때 당시 태어난 여자아이들이 그랬듯

막내인 남동생에게 치이고, 할머니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면서 언니의 손에 길러진다.


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부터 1번인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했고,

밤길에 남학생이 쫓아와서 해코지를 당할 뻔해도 '네가 먼저 웃어 놓고 왜 그래'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마저 스스로가 잘 처신해야 한다며 꾸짖는 상황에서

김지영 씨를 위로해준 건 버스에서 만난 모르는 아줌마였다.

그건 남자애가 이상한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당연한 위로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 후로도 김지영 씨는 여자가 너무 똑똑해도 부담스럽다는 사회에 살며

성추행 정도는 그냥 넘기는 게 서로 좋은 일 아니냐는 직장에 다닌다.

그나마 그런 직장도 아이를 낳으면서 그만두게 되고,

이제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놀고먹는 여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화가 난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평범한 여자들이 당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의 차별.


물론 남자여서 당하는 차별도 있을 테지만 이 책만 두고 봤을 때는 그렇다.

남자에게는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지만

그것도 사실 여자를 짐처럼 취급하는 행동이 아닐까.

아니 예전에는 애초부터 여자들에게는 기회를 안 주는 시대였다.


김지영 씨가 살았던 시대는 그나마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김지영 씨의 엄마처럼 모두가 희생하는 것은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 김지영 씨의 엄마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작년 안 좋은 사건으로 남자들과 여자들이 본의 아니게 대립하게 되었을 때,

나 역시도 내 주변에 있는 남성들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생각이었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화가 났다.


단순히 그건 겁이 많은 거다,

짧거나 타이트한 옷차림에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늦은 시간에는 안 돌아다니는 게 좋은 거다.


여자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자의 잘못도 있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자들이 겪는 문제는 직장을 다니면서 출산과 육아를 하는 일.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일을 그만둔 건데

사람들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놀고먹는 여자라고 손가락질한다.


왜?

나도 집안일을 하고, 남편이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건데.

내가 하는 일을 남편의 돈을 훔쳐다 쓰는 일인 건가?

그만큼의 가치도 없는 사람인가 나는.

이런 끝없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결국 김지영 씨는 마음에 병이 든다.


남자가 읽는 이 책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여자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할까.

이 책의 마지막도 무언가 우리에게 일침을 날린다.

이 책만으로 어떻게 모든 걸 판단해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은 모두 사실이다.

여자들에게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어떤 특별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

모든 것에 토를 달자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잔 뭐 하잖아, 그래서 남잔 뭐 하잖아.' 이렇게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조금 이해가 필요할 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책은 너무나도 무겁다. 그래서 여자도 읽고, 남자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해야겠다는 마음이라도,

그런 시작이라도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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