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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ngPolang Oct 21. 2016

왜 그래요? 반려견 세미나 간다는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광복 이후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유학을 가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여행을 떠나는 목적지는 주로

사이판과 같은 휴양지 또는 파리나 뉴욕처럼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 등으로 치중되었던 시기였다.


그 날, 나의 목적지는 미국의 어느 이름도 낯선 시골 광야였다.

그곳에서 반려견 관련 전문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세미나에 온 전문가들도 만나고, 그 인근에 거주하는 전문가들도 만날 계획으로

사전에 미팅 약속을 잡아놓고, 일정도 확인해두고, 그 시간을 120% 활용하고 오기 위해 꽤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한 여행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장기 비자도 갖고 있었고 (당시는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미국 입국에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던 나는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숙소까지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굴리며 입국 심사대에 섰다.

순식간에 입국 심사가 끝날 거라는 착각으로.


"안녕. 뭐하러 왔니?"

"반려견 컨퍼런스 참석하러 왔지. 반려견 좋아하니? 이름 있는 컨퍼런스니까 좋아하면 너도 알겠다. 여기서 컨퍼런스 열리는 거. 모르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이것이 화근이었다. 

말이 너무 많았다.

자고로 입출국 심사 시에는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생긋 웃으면 그만인 것을.


"뭐라고? 이게 뭐야. 이 조그만 나라에 사는 어린 아가씨가 고작 반려견 행사 하나 때문에 비싼 항공권을 구입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응? 맘에 안 드는 게 어느 부분이야? 조그만 나라? 어린 거? 항공권을 내가 산 거? 어느 거?"

여러모로 괘씸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단지 그가 이 이벤트의 중요성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가 미국에 입국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증빙들을 보여주면 바로 통과되리라.

그래서 컨퍼런스 등록카드며, 항공권, 호텔 예약 확인서 등을 주르륵 꺼내보였다.

"자. 여기 내용을 봐. 중요한 행사야."

그는 잠시 나를 홀드 시켰다가 돌아오더니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어딜 가는데?" 

"따라와 보면 알아."


그는 나를 뒤편의 적막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와, 세상에. 이런 방을 다 와보는구나.' 

빨리 통과시켜주지 않는 것이 답답하면서도,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나 싶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다른 얼굴의 담당자 두 명이 들어왔고 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그들은 갸우뚱거렸다. 

그들이 갸우뚱거리는 이유가 알 수 없어서, 나도 갸우뚱거렸다.

"저기 말이지. 정말 단지 반려견 컨퍼런스 때문에 온 거야?"


"응. 이전에도 같은 일로 미국에 왔었는데, 왜 이번에는 그게 문제가 되니?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 정말 중요한 행사야. 왜 마음이 불편해? 어떻게 하면 편하게 보내줄 거야?"


장시간 비행에 입국이 지연되면서 피로가 몰려온 나는

더 이상 이런 일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 입국하는 게 그들에게 해가 될 일이 전혀 없는 건 내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리와 봐"라고 불러 모았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바닥에 내용물을 와르르 쏟았다.

가방 안에서는

반려견에 대한 책들과 논문, 서류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것을 본 담당자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응, 맞구나. 개에게 미친 아이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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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www.polangpolang.com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국제 인증 반려동물 행동심리 전문가  

    저서 <당신은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 

    반려동물의 감정(Feeling)과 니즈(Needs)에 공감하는 교육을 알리며 

    반려동물 교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의 대표로 

    동물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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